“안전보다 중요한 인권은 없다”…밀폐공간서도 안전하게 일하도록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들이 밀폐공간 공사 현장에서 작업자 긴급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설공단)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기 위해 우리의 발밑 지하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피와 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 가정에서 흘려보내는 생활하수와 빗물 등이 모이는 지하 하수도 시설과 밀폐공간 등은 수시로 유지보수 공사를 해야 하는 곳이다. 문제는 이런 밀폐공간에서는 산소부족이나 유해가스로 인한 질식 사망 사고는 물론, 폭우로 배수시설을 점검하던 노동자가 수몰되는 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던 서울시설공단은 노동자들이 지하 밀폐공간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개발하고 작업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통해 밀폐공간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개발자와 현장의 공사감독에게 직접 들어봤다.

10년간 질식 재해 사망·부상자 312명

“하수도 공사장에서 맨홀 작업을 하던 노동자 3명이 유독가스로 질식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배수시설을 점검하던 작업자들이 불어난 빗물에 휩쓸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작업자들의 안타까운 질식 사고와 수몰 사고. 지하의 밀폐공간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상하수도 처리장의 각종 탱크, 상하수도 관로, 하수 박스 등의 밀폐공간은 유해가스가 흘러들거나 폭우가 기습적으로 내리면 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0~2019년 발생한 밀폐공간 질식 재해 사망자 수는 166명이며 부상자 수는 146명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안전 점검을 실시하지 않거나 안전 장비 없이 작업하다 발생한 사고다.

이에 서울시설공단은 이런 재해를 막기 위해 재해 발생의 원인을 없애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2018년 공공기관과 중소기업 간 성과공유제의 일환으로 공동개발을 시작했다. 물론 통신기술과 경보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제품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선 20년 공사감독 경력의 조건영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는 “중소 기술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개발 후 수익성과 실효성도 적어 보였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서울시설공단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이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3년에 걸쳐 이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에서 공사감독을 하기 전까지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우리 사회가 이들 덕분에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 국무총리상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이란 지상과 지하의 위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즉 작업장 내부와 지상에 각각 유해가스와 기습 강우를 측정할 수 있는 ‘자동감지센서’와 위험 상황 발생 시 소리 경보와 불빛 경보가 작동하는 ‘위험 경보기’를 설치한 후 지상과 지하의 위험 상황을 알리는 발광다이오드(LED) 표시판을 설치해 실시간으로 관찰(모니터링)한다. 그리고 위험 상황 발생으로 경보기가 작동하면 작업자가 즉시 대피할 수 있게 되는 것.

아울러 서울시설공단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골든타임 안에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 동선과 지상·지하의 위치 연계 지도를 현장별로 제작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관할 소방서와 합동 모의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시스템 개발 이후 서울시설공단은 2020년 ‘청계천 차집관로 단면보수공사’를 비롯해 하수 박스, 하수 탱크, 복개 구조 등 12개 밀폐공간 공사 현장에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적용해 현장의 사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20년 11월에는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의 성과를 인정받아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주관으로 열린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조건영 이사는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성과는 밀폐공간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안심하고 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며 “앞으로도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위험 정보 전달과 모니터링을 통해 안전사고와 재해 예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개선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설공단은 전국의 모든 지하 밀폐공간 작업 시 이 시스템이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 홍보영상물을 만드는 등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은 공사 현장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 기술이 적용돼 앞으로 더욱 발전된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 이사는 “현장 노동자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우리의 이웃이다. 안전보다 더 중요한 인권은 없다. 단 한 명의 작업자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며 “서울의 주요 시설물에 대해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 작업자와 시민 모두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안도하고 기뻐해” - 서울시설공단 이강후 공사감독

서울시설공단에서 밀폐공간 공사 현장을 관리·감독하는 이강후 공사감독이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접한 것은 2020년이었다. 당시 청계천에 복개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구역은 비가 내리면 물이 한꺼번에 모이는 구간이라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작업해야 했다. 따라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면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이 개발되고 처음으로 공사 현장에 적용한 날, 공사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이 감독은 “현장에서 시스템을 설치하고 테스트하기 전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됐다. 그리고 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위해 빗물 센서에 물을 흘렸는데 경보기가 곧바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이 시스템을 보고 밀폐공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무척 기뻐했다. 본인들의 안전을 위해 이런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것에 감동하며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복합 유해가스가 많은 맨홀 작업장에서 공사할 때도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설치해 사전에 ‘복합가스 안전 유무’를 파악하고 들어가니 확실히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지하 밀폐공간 공사를 관리·감독하는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사고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무척 무겁다”면서 “더 많은 공사 현장에서 스마트안전경보시스템을 활용해 작업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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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