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과로사 대책' 극적 합의
기사 하루 작업시간 12시간 제한
택배사, 분류 전담인력 따로 둬야
상·하차에 외국인력 고용 허용
택배노동자 과로사의 주범으로 꼽혀 온 택배 분류작업을 앞으로는 택배사가 투입하는 전담인력이 맡게 된다. 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택배노동자의 심야 배송이 밤 9시까지로 제한된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합의기구)는 21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차 합의문을 발표했다. 전국택배노조가 예고한 27일 총파업을 앞두고 이뤄진 극적인 타협이다. 합의 직후 택배노조가 총파업을 철회하면서 설 명절을 앞두고 우려됐던 택배 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합의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 출범한 합의기구가 다섯 번의 회의를 거쳐 마련한 것이다. 이 합의기구에는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택배노조)와 택배사,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그리고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정부 측이 포함돼 논의를 이어왔다.
지난 19일 오후 열린 제5차 회의에선 쟁점이었던 택배 분류작업의 책임소재를 두고 노사 간 의견이 엇갈려 합의가 결렬됐다. 20일 재개된 협상에서도 일부 택배사가 난색을 표해 결렬 직전까지 갔으나 민주당과 국토부가 노사 양측을 설득한 끝에 21일 새벽 합의가 이뤄졌다.
합의문의 핵심은 택배 분류작업을 ‘다수의 택배에서 타인 또는 본인(택배기사)의 택배를 구분하는 업무’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이 노동자가 아닌 택배사에 있다는 점을 명시한 부분이다. 택배노동자들은 택배 분류를 과중한 업무부담의 주요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날 합의는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의 기본 작업범위에서 제외하고, 택배사가 분류작업 전담인력을 투입해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또 불가피하게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하게 될 경우 택배사가 적정 대가를 지급하도록 명시했다. 택배 사업자는 앞으로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국회와 정부는 예산·세제 등을 통해 이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합의안에는 근로환경 개선 대책도 포함됐다. 택배노동자의 적정 작업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 작업시간을 주 60시간,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하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밤 9시 이후 심야 배송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 밖에 택배비·택배요금 거래 구조를 개선하고, 설 명절 성수기 특별대책과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대책도 담았다. 택배 터미널 상·하차 업무에 인력을 구하기 어려울 경우 해외동포, 외국 인력 고용을 허용하는 방안 등 택배업계가 요구해 온 제도 개선책도 들어갔다.
이번 합의를 이끌어온 우원식 민주당 민생연석회의 수석부의장은 “합의기구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의 노력이 있었지만, 특히 과로사대책위(택배노조)와 택배사가 양보해 가며 타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추가 과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토론하면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합의문 발표식에 참석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당 대표가 되고 제일 처음 방문한 민생 현장이 택배사였다”며 “바로 그날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3개월 남짓한 시간에 이런 결실을 이뤘다는 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민생연석회의 간사이자 당 을지로위원장인 진성준 의원은 “더는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게 1차 합의를 넘어 2차, 3차 합의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분류작업 책임과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는 택배업계가 추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 확보 방안은 합의안에서 빠져 업계에서 ‘미완의 합의’라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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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