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백인 총으로 살해한 미국 흑인 피해자, 징역 11년형 타당한가?

성착취범 백인 남성 총기 살해 10대 흑인 소녀
인신매매 피해자 면책에 기댔지만 '징역형'
"법원, 피해자 입장 이해 못 해" 비판 쏟아져

▲ 미성년자 때 성착취·인신매매를 당하다 가해자를 총기로 살해한 크리스툴 카이저(오른쪽)가 지난 5월 미국 위스콘신주 케노샤 법원에 출석해 있다.
10대 시절 자신을 성착취한 남성을 살해한 흑인 여성이 미국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성매매를 비롯한 인신매매 피해자에게 적용되는 '적극적 방어(affirmative defense)'라는 면책 조항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는 결국 기각됐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위스콘신주(州) 케노샤카운티 법원 데이비드 윌크 판사는 크리스툴 카이저(24)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17세였던 자신을 성적으로 착취하던 백인 남성 랜들 볼라르(34)를 살해한 죗값이기는 하나 가혹하다는 반론도 잇따르고 있다.


"미성년 성착취범, 피해자 손에 죽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18년 6월이었다. 당시 18세였던 카이저는 볼라르의 집에서 그의 머리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이후 카이저는 집에 불을 지른 뒤 볼라르의 차를 타고 도망쳤다. 며칠 뒤 경찰에 붙잡힌 카이저는 살인을 인정했다.

카이저는 그보다 1년 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볼라르를 처음 알게 됐다. 카이저는 볼라르가 자신에게 돈을 주며 성적으로 학대했고, 다른 남성들과도 성매매를 시켰다고 WP에 밝혔다. 볼라르가 직접 촬영한 성학대 영상도 발견됐다. 성착취는 1년여간 이어졌다.

카이저는 법정에서 "그날 밤 성관계를 하기 싫다고 말했을 때 볼라르는 나를 바닥에 쓰러뜨렸다"며 "나는 그의 추행에 이골이 났고 핸드백에서 총을 꺼내 그를 쐈다"고 설명했다.


성착취 피해자는 그만이 아니었다. 볼라르는 피살 4개월 전 아동 성폭행 등 혐의로 체포됐다. 그의 집에는 아동 성착취 영상 수백 개가 있었고, 이 중 20개가량은 십수 명의 흑인 소녀를 상대로 그가 직접 촬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곧장 풀어줬고, 볼라르는 자유로운 상태로 조사를 받던 중 카이저에게 목숨을 잃었다. WP는 이 사건을 "그는 어린 소녀들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피해자 중 한 명이 그를 죽였다"고 요약했다.

역사적 면책 주장, 실패로 끝났다
법정 다툼은 6년간 이어졌다. 검찰은 당초 종신형 선고 대상인 '1급 고의 살인' 등 혐의를 제기했으나, 양측 모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만 인정하기로 지난 5월 합의가 이뤄졌다.

카이저는 살인을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카이저가 기댄 것은 '적극적 방어'라는 면책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인신매매 피해자가 학대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음을 증명할 경우 무죄를 받을 수 있다.

검찰은 이를 살인죄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맞섰지만,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2022년 카이저가 면책을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역사적 판결로 평가받았다. WP는 "'적극적 방어' 법리가 살인 등 폭력 범죄에서 적용된 전례는 위스콘신은 물론 (미국) 어디에서도 알려진 바 없다"고 짚었다.


그러나 면책 희망은 결국 좌절됐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케노샤카운티법원 윌크 판사는 "당신(카이저)은 유죄를 인정했다. 자비를 주장할 수는 있지만, 면죄부를 주장할 수는 없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즉각 비판에 휩싸였다.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 단체 리싱크리소스 창립자 클로딘 오리어리는 "법원은 종종 완벽한 피해자를 찾고, 카이저는 그렇지 않았다"며 "그들(사법부)은 카이저가 겪은 경험의 종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인신매매 방지 단체 셰어드호프인터내셔널 활동가 사라 벤트슨도 법원의 시각이 경직돼 있다며 "카이저는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지옥을 다녀온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벤트슨은 다만 법원 판단은 실망스럽지만, 카이저는 미국 사회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사건이 드러나고, 지지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를 바꿀 것"이라며 "우리가 원점으로 돌아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WP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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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