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ㆍ위메프 사태] 이커머스 '지연 정산' 탓, 입점업체들 은행서 끌어다 쓴 돈 4.5조

'선정산 대출' 상품 2019년 출시 후 대출 증가
5년 누적 4.5조 원...연 5~8% 금리로 은행돈 빌려
정산주기 손본다지만...14% 수수료까지 '이중 부담'

▲ 한 티몬·위메프 사태 피해자가 13일 서울 강남구 티몬 사옥 앞에서 조속한 정산 및 환불, 구영배 큐텐 회장 수사를 촉구하는 검은 우산 집회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이 판매 대금을 늦게 정산해주는 탓에, 은행에서 연 6%에 달하는 고금리로 먼저 돈을 빌린 뒤 정산받아 갚는 입점업체의 ‘선(先)정산 대출액’이 4조 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제2의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정산 주기를 단축시킨다고 했지만, ‘지연 정산’ 구조는 그대로여서 10%를 웃도는 플랫폼 중개수수료에 대출이자까지 소상공인이 이중 부담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에서 일단 빌린 뒤 대금 받는 ‘선정산 대출’ 매년 증가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플랫폼 입점업체의 선정산 대출’ 내역에 따르면, 관련 은행 대출상품이 생긴 2019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선정산 대출 규모는 누적 4조4,575억2,900만 원에 달한다. 연 1조 원을 밑돌았던 대출 규모는 2022년부터 가파르게 늘어 2023년 1조5,198억 원을 넘었고, 올해는 7월까지 1조1,635억 원을 기록하는 등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해 물건을 파는 중소상공인이 플랫폼으로부터 정산받을 때까지 정산받을 금액(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끌어다 쓴 돈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논란이 된 티몬과 위메프뿐만 아니라, 10개 플랫폼 중 7곳의 선정산 대출액도 증가세였다. 예컨대 SSG닷컴 입점업체들은 작년 1년 동안 76억300만 원을 대출받았는데, 올해는 7월까지 그보다 약 2배 많은 130억5,400만 원을 빌렸다. 쿠팡 입점업체들은 작년 한 해에만 5,658억8,600만 원을 연 5.41~8.02%의 이자를 부담하며 대출받은 후, 두어 달이 지나 쿠팡으로부터 수수료를 제외한 돈을 정산받아 이를 갚았다. 무신사나 에이블리, W컨셉 등 의류 플랫폼 입점업체들도 예외는 없었다.


정부, 정산 주기 앞당기겠다지만... '지연 정산' 구조는 손 못 대
정부는 제2의 티메프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 두 달이 넘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대금 정산 주기를 오프라인 업체(40일)보다 단축하고, 에스크로 계좌 이용을 의무화해 입점업체에 가야 할 돈을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는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정산 대금이 지연 입금되는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아, 소상공인이 '이중 부담'을 져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입점업체들은 플랫폼에서 판매한다는 이유로 판매 수수료를 내는데, 플랫폼이 대금을 늦게 지급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아 이자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 발표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의 평균 판매 수수료율은 14.3%였고, 최대 35.0%를 받고 있다.


의류를 팔고 있는 한 오픈마켓 셀러(입점업체)는 "플랫폼 기업 입장에선 1,000만 원이 적은 돈이겠지만, 저 같은 소상공인한테는 정말 큰돈"이라며 "내 물건을 팔고도 돈을 못 받아 일단 은행에 이자를 지불하면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게 어이없지만, 플랫폼 아니면 판로가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 의원은 "소상공인은 판매대금을 받기까지 두어 달을 버티기 위해 높은 이자를 부담하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플랫폼 업체는 판매대금을 예금에 넣고만 있어도 이자를 두둑이 챙기는 현 구조는 개편이 필요하다"며 "혹여 입점업체에 갈 판매대금이 유용되면, 언제든지 제2의 티메프와 같은 대규모 위기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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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