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국 국민당 대부 "시진핑 믿자" 호소가 역풍 불렀다

마잉주 "시 주석 믿어야 한다" 발언 역풍
친미·독립 성향 민진당 표심 결집 계기
야권 단일화 실패 영향도...3위 커원저 주목

▲ 13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 민진당 선거운동본부 인근 거리에서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한 지지자가 '투표를 통해 시진핑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자'라고 쓰인 패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운집한 민진당 지지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비슷한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었다.
"시진핑에 대한 신뢰를 거절한다."

대만 제16대 총통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13일 오후 9시(현지시간). 수도 타이베이에 위치한 민진당 선거운동본부 인근 도로는 라이 후보 당선에 환호하는 수만 명의 지지자로 가득 찼다.


"민주주의의 승리" "라이칭더 짜요(加油·힘내라)"라는 시민들 함성과 함께, '투표를 통해 시진핑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자'는 표어가 적지 않았다. 친(親)중국 성향 국민당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의 발언이 선거 막판 반(反)중국 표심 결집을 불러일으켰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 그림자 벗어나자 열망 표출"
마 전 총통은 제1야당 국민당의 '큰어른' 격이다. 그는 선거 사흘 전인 10일 독일 매체 인터뷰에서 "양안(중국과 대만)관계에 있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안관계 안정'을 강조해 온 국민당의 허우유이 총통 후보를 돕기 위한 발언이었으나, 되레 역풍을 맞았다.

이 발언 이후 라이 후보는 "이번 선거는 대만을 믿느냐, 시진핑을 믿느냐의 선택"이라며 반중 여론을 자극했다. 안보보다 민생 문제에 집중해 온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조차 "당선되면 국방 예산을 2.5%에서 3%로 늘리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허우 후보는 선거 이틀 전인 11일 회견에서 "당선되면 임기 중 통일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반중 심리 결집을 막지 못한 셈이 됐다. 13일 민진당 선거 본부 앞에서 만난 췌준(45)은 "그(시 주석)는 티베트를 억압했고 홍콩을 삼켰다"며 "'일국양제(1국가 2체제)' 같은 말을 절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그림자를 벗어나려는 대만인들의 열망이 선거 막판 표출됐다"고 평가했다.

야권 단일화 실패...허우유이의 뼈아픈 실책


'야권 단일화' 실패도 허우 후보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지지율 2위를 달리던 허우 후보와 3위였던 커 후보는 지난해 11월 야권 단일화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청년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던 커 후보 지지율이 20%를 상회하면서 허우 후보로선 후보 단일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조건 등을 놓고 이견이 불거졌고,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이번 선거에서 허우 후보는 33.4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커 후보는 26.46%를 얻었다. 반면 라이 당선인의 득표율은 40.05%였다. 야권 단일화가 성공했다면 다른 결과가 도출됐을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다.

반대로 커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 대만 정계에서 무시 못할 존재로 거듭났다는 게 대만 현지 언론 평가다. 대만 총통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한 1996년 이후 제3정당이 20% 이상의 득표율을 올린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 격) 선거에서도 민중당은 전체 113석 중 8석을 차지했다. 민진당(51석)과 국민당(52석) 간 의석 차이가 거의 없고 양당이 모두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중당이 강력한 '캐스팅보터'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대만 중앙통신은 14일 "민중당이 창당 5년 만에 정치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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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