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위협에도 40명 모였다…우크라∙러 기자들 "韓여론 궁금"

뉴욕에 머물며 뉴욕타임스(NYT)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마샤 플로리악(38).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고향땅으로 향했다. 플로리악은 그의 고향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국립 언어대학(Linguistic University)에서 영어 통번역을 전공한 재원이다.


고향에 도착한 플로리악은 사실상 NYT의 종군 기자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3월 말 그가 기자로서 밝혀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사건이 터졌다. 수도 키이우 북서쪽의 소도시 부차 등지에서 450여구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저지른 만행"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부차 대학살'이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며 반발했다.

진실을 찾기 위해 플로리악은 자료 수집부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휴대전화 녹화 영상을 하나하나 받아냈다. CCTV 자료도 입수했지만 23테라바이트(TB) 분량(영화 570편 규모)의 영상을 분석하는 동안 전기는 수시로 끊겼다. 그렇게 러시아군의 차량·무기·제복 등을 파악해 학살의 증거들을 수집했다. 유가족의 협조를 구해 사망자의 휴대전화 기록을 얻었고, 러시아군이 피해자의 전화기를 빼앗아 본국 가족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확인했다.

8개월에 걸친 추적 보도 끝에 플로리악은 러시아군 234연대가 학살의 주범이란 걸 밝혀냈다. 그는 올해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상을 받았다. 러시아의 부인에도 ‘부차 학살’은 이 전쟁의 의혹이 아닌 사실이 됐다.


플로리악은 지난달 19~22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국제 탐사보도 콘퍼런스(2023 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Conference)에 참가해 본인의 취재 경험담을 발표했다. 전 세계 2100명여 명의 기자와 저널리즘 학자, 미디어 관계자들이 참가한 이 행사엔 플로리악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기자 40명이 함께 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전쟁 발발 뒤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러시아 국적의 기자들도 있었다.


'살해하겠다' 익명의 메시지로 위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적의 기자들이 모여 러시아의 만행을 언급하는 자리는 콘포런스 기간 내내 주요 강연으로 열렸다. 그 장소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는 스웨덴이었다. 데이비드 캐플런 국제탐사보도협회(GIJN, 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Network) 대표는 "더 많은 러시아 기자가 참가하려 했지만 ‘그들을 살해하겠다’는 익명의 메시지가 협회 측에 전달돼 안전상 초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콘퍼런스가 열린 스벤스카 매산(Svenska Massan) 컨벤션센터엔 허벅지에 총을 찬 경찰이 건물 안팎을 드나들었다. 긴급 상황을 대비한 듯 경찰차도 문 앞에 서 있었다. 건물 밖을 나갔다 들어올 때면 필수적으로 가방 검사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참가자들의 입장 시간이 늦어져 오전 강연 일부가 예정 시간보다 늦게 열리기도 했다. 주최측은 참가자들에게 “행사장 주변에서 출입증 목걸이를 하지 않은 사람이 말을 걸면 신고해달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도 보냈다.

한 강연에서 우크라이나 기자를 향한 방청객 질문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함을 느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걱정 담긴 질문이었지만 자유유럽라디오방송의 발레리아 레고시나 기자는 유쾌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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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