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0원까지 갈수도” 최약체 원화의 반전…아시아서 1위 먹었다

AI에 기반한 반도체 바닥론 기대감
중국에 등돌린 외국인 사자까지 더해져
FT “중국 제외 투자 상품 수요 증가”
원화, 달러·유로·엔·위안화에 모두 ‘강세’
위안화 탈동조화·자본 리쇼어링도 원화 힘 키워
최약체 원화, 이달 통화가치 상승률 1위로
외환전문가 원화가치 전망 상향 조정
하반기 원화 상단 1250~1260원대 가능성

올해 들어 한때 심한 약세를 보였던 원화 가치가 최근 크게 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기반한 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외국인 ‘사자’ 행렬이 더해지면서 약세의 늪에 빠졌던 원화가 단숨에 강세로 돌아섰다. 원화의 갑작스런 부활에 외환 전문가들도 하반기 원화 가치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1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미국달러화 대비 원화값(1271.9원)은 1개월 전보다 5.19% 상승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11개 주요 아시아 통화 중 가치 상승폭이 가장 컸다. 원화값은 23개 신흥시장 통화 중에서도 콜롬비아 페소(8.28%)를 빼면 가장 상승률이 높았다. 같은 기간 영국 파운드화(-2.34%)나 유로화(-1.85%), 일본 엔화(-3.31%), 중국 위안화(-1.96%), 태국 바트화(-1.56%), 인도네시아 루피화(-0.82%) 가치가 일제히 떨어진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올들어 원화값은 지난 4월 연중 최저치인 1340원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 원화값은 8.34% 하락해 아시아권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신흥국 중에선 1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화(-11.4%)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페소화(-16.2%)에 이어 세 번째로 낙폭이 컸다.

최약체였던 원화의 대반전은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원화값은 지난달(1342.1원→1327.2원) 14.9원 상승한데 이어, 이달 들어선 16일 기준 49.7원(1321.6원→1271.9원) 뛰었다. 이 기간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대체로 102 부근에 머물다가 이달초 104 안팎까지 올랐다. 달러가 잠시 강세였는데도 ‘스트롱 원’을 뽐 낸 셈이다. 원화는 달러 뿐만 아니라 엔화, 위안화, 유로화 등에 대해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화 ‘나홀로 강세’ 배경엔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있다. AI 열풍을 타고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승승장구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 투자 확대와 감산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그 결과 국내 주식시장에선 대형 반도체주 중심으로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 신뢰가 약해지면서 중국에서 이탈한 외국인 투자 자금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중국을 뺀 아시아 투자 상품(ex-China)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중국 경제성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고, 미국과의 지정학적 갈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달 국내 증권투자자자금 순유입액은 월간 기준 역대 최대인 114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6일까지 외국인은 한국 주식과 채권을 각각 7840억원과 7조1156억원 순매수했다. 이같은 외국인투자는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기 때문에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높인다.

위안화에 대한 ‘디커플링(탈동조화)’ 조짐도 원화 강세 요인이다. 지난달부터 위안화는 부진한 경제지표 탓에 심리적 마지노선인 포치(달러당 7위안)를 넘어서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원화는 위안화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원·위안 커플링(동조화)은 한국이 중국에 기술 중간재를 수출하는 등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라며 “최근 이런 수출 비중이 줄고 있는데다 중국 외적인 요인으로 반도체 업황이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면 원화가 위안화를 따라갈 요인이 약해진다”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 수출비율은 2018년 26.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작년 22.8%, 올 1분기 19.5%로 떨어졌다.

국내 대기업의 자본 리쇼어링도 원화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거액의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기 때문에 원화 가치 상승 효과가 기대된다. 실제 지난 12일 현대자동차그룹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59억달러를 국내에 들여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외환시장에선 달러 매도가 늘었다.

다만 원화 강세의 독주가 지속될지는 지켜봐야한다. 일단 외환 전문가들은 하반기 원화가치 상단을 1270~1280원에서 1250~1260원으로 올리는 분위기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원화 가치가 126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위안화 약세가 연장되는 상황에서 원화만 계속 강세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제조업 경기의 뚜렷한 반등 모멘텀이나 국내 반도체 수출실적 등 무역수지 개선이 부족한 것도 원화의 힘을 빠지게 하는 요인이다. 문정희 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7월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9월의 추가 인상할지가 변수”라며 “단기적로는 외국인 순매수가 지난달보다 약해진데다 이번주부터 연준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이 나올 경우 원화가치 상승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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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