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전쟁 싫어’ 러 군인들, 심지어 서로 총 쏘기도

러시아 국경수비대 소속 미하일 질린 대령은 지난해 가을 자신의 부대가 우크라이나전쟁에 투입되자 곧바로 탈영했다. 짐을 싸서 카자흐스탄 국경지대로 간 질린 대령은 버섯 채취꾼 복장으로 가라입고 국경을 넘으려 했던 것이다.

무사히 러시아를 벗어났지만, 카자흐스탄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질린 대령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지 않았고, 러시아 당국에 그를 넘겼다. 질린 대령은 현재 구치소에 구금된 채 반역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질린 대령처럼 탈영한 러시아 장병들은 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실시된 징집을 회피해 해외 도피에 나섰거나, 이번 전쟁에 참전하길 거부한 채 다른 지역 배치를 요구하는 병사들까지 합치면 수천명에 이른다.


질린 대령의 아내 에카테리나 질리나씨는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자유는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 남편처럼 쟁취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남편이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다면 그건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는 그에게 ‘훈장’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신문은 질린 대령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러시아인들 가운데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면서 “징병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전투부대 소속이 아니었던 장병들을 중심으로 전쟁 참전을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대법원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징병령 발동 이후 징집을 거부하다 체포된 성인 남성은 1121명에 불과하다. 다수가 벌금형을 받고 군대에 재소집됐지만, 끝까지 소집을 거부한 경우 중형의 징역형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징집 거부의 법정 최고형은 10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로 배치돼 전투 현장에 투입되고 나서도 총을 놓고 참전을 거부하는 군인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 전투부대 소대 병사들은 서로 다리에 총을 쏴 부상을 입힌 뒤 적군의 포격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상부에 보고한 뒤 참전을 거부한 경우도 발생했다고 한다. 소대를 지휘한 장교조차 부하 병사에게 “다리에 총상을 입혀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현재 수배상태에서 도피중인 이 장교는 신문과의 접촉에서 “자발적으로 우크라이나 최전선에 배치해달라고 간청해 전장에 가보니, 우리 군대는 진짜 형편 없었다”면서 “이런 군대가 전면전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됐고, 이젠 ‘내가 목숨을 바칠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돈바스지역에서 매일 벌어지는 살육전에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투입된 일부 부대에선 “무조건 돌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아무 승산없이 육탄전을 벌이라는 거냐”고 항명하며 전투 현장을 떠난 경우도 있었다.

참전 거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병사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드미트리 코발렌코 변호사는 신문과의 접촉에서 “러시아군의 실상은 제대로 준비도 안된 장교와 병사, 잘못된 전술, 심각하게 낡아빠진 무기 체계로 매일 벼랑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발렌코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를 맡고 있는 두 병사는 지난해 명령 불복종으로 체포된 뒤 컨테이너 트럭에 물과 음식도 없이 며칠동안 구금되기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다른 병사들은 돈바스 최전선 부대 병영내에 마치 돼지처럼 울타리에 갇혀 온갖 모욕을 받아야 했다고도 했다.

NYT는 “러시아군 사이에선 전쟁의 공포를 술로 달래는 경우가 너무나도 흔할 정도로 사기가 저하돼 있다”면서 “이번 전쟁의 명분이 희박한 상태에서 목적의식을 가질 수 없는 군대로선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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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