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 없다, 돌격앞으로!… 우크라전쟁, 끔찍한 참호전쟁중

러 소총 안 주고 무차별 병력 투입
21세기에 1차 대전식 참호전 빈발
용병 그룹 수장도 “보급 없으면 위험”

▲ 러시아 병사가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남부 점령지 마리우폴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최전선. 우크라이나 육군 제79 공중강습여단 소속 병사 보그단은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반대편에서 러시아군 수십 명이 삽으로 참호를 파는 장면을 목격했다. 몰살당할 수 있는 지척의 거리에서 참호를 파는데도 주위엔 이들을 엄호하는 탱크나 장갑차가 없었다.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관측한 영상에선 이곳 후방 20m 뒤에 또 다른 러시아군 참호가 일렬로 길게 파여 있었다. 20m 전진을 위해 소총 한 자루와 삽만 든 러시아 병사들이 몰려나온 것이다. 결국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의 로켓포 공격에 전멸하다시피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종군 취재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군의 인해전술로 구시대 유물인 참호전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1세기 최대의 전쟁이 100여년 전 제1차 세계대전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는 ‘근접 참호전’이 됐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러시아군 참호를 ‘제로 프론트라인(제0 전선)’이라고 부른다. 러시아군의 생존율이 0%란 뜻이다. 미국의 한 군사 관련 싱크탱크는 최근 이번 전쟁에서 발생한 러시아군 사상자가 3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이중 절반 이상은 러시아가 무차별 병력 투입 전술로 돌아선 최근에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11월부터 추가 병력 수십만 명을 투입하고도 러시아가 동부전선에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겨우 643㎢ 정도에 불과하고, 바흐무트 등 전략 요충지는 아직 한 곳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심지어 러시아군은 강제 징집된 병사에게 소총 대신 삽을 들고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최근 증거에 따르면 근접전이 빈번해지고 있다”면서 “탄약이 떨어진 상황인데도 러시아군 사령부는 보병 공격을 계속 지시한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 징집병들은 총기, 그게 없으면 삽으로 우크라이나군 콘크리트 거점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삽은 구식 MPL-50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 삽은 1869년 처음 제작된 것으로 참호를 파기 위한 것이지만 근접 백병전에선 살상용 무기로 사용된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잔인한 저급 전투를 계속하는 중”이라며 “여러모로 야만적인 전쟁”이라고 덧붙였다.

탄약 부족에 대한 호소는 러시아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용병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바흐무트 전투에서 총탄과 포탄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으면 러시아군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NYT는 “지금은 우크라이나군의 무장이 러시아군을 압도한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과 ‘1대 15 또는 1대 20’로 싸우지만 서방의 집중적인 무기 지원으로 동부 전선 전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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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