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푸틴, 강경 참모들만 의지해 전장 이해 제한적"

WSJ, 전 러 고위 관료 포함 전현직 미·유럽 당국자 취재해 보도
애초부터 푸틴이 듣고 싶은 정보만 전달되게 설계된 권력 구조…우크라 전쟁 오판에 영향 미쳐

러시아가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키이우 후퇴', '하르키우 후퇴'에 이은 '헤르손 후퇴' 등 패퇴와 굴욕적 철수를 거듭하는 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판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애초부터 지난 22년간 러시아의 권력 구조가 푸틴이 듣고 싶은 정보만 전달되도록 설계돼온 데다, 점점 고립과 불신이 짙어진 푸틴이 강경한 참모들 말에만 의지하다보니 전장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직 러시아 고위 정보관을 포함한 전·현직 미·유럽 당국자들을 취재한 결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열악한 장비만 갖춘 러시아 최선전 부대가 서방이 제공한 포병 지원을 받고 진격한 우크라이나군에 포위됐는데도, 푸틴 대통령은 장군들의 조언을 거부하고 군대에게 계속 버티라고 지시한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사례를 예로 들면 러시아군은 지난 9월 말 우크라이나 동부 작은 도시 라이만 전투에서 이미 패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스크바에서 암호화된 회선을 통해 최전선 지휘관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전달된 건 후퇴하지 말라는 푸틴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의 매복이 계속되면서 10월 1일 러시아군은 전우의 시신 수십 구와 포병 보급품을 남겨둔 채 줄행랑 치듯 급히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신속하게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몇 달간 손실만 큰 수렁에 빠지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립과 불신을 통해 자신의 호전적인 세계관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매체는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여름 내내 군사전문가와 방산업체 대표단이 대통령 주재 회의에 등장해 푸틴 대통령이 전장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건 그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이길 수 있다'고 사탕발림하는 일부 참모진 때문이라고 매체는 진단했다. 한 소식통은 WSJ에 "푸틴 주변 인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대통령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러시아는 전장에서 비참한 결과를 보고 있다. WSJ는 "시간이 지나면서 군 복무 경험도 없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 당국자들은 푸틴에게 직언할 수 있는 크렘린궁 내부자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매체는 전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외교·안보·정보 채널을 통해 거의 매일 접촉하지만 대화 자체도 제한적이라 한계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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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