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효과 부른 SPC 회장 사과.. 가맹점주·소비자 "더 화났다"

허 회장 진정성 없는 사과에 공분
공장 운영 재개·빵 조문도 결정적
가맹점주 "경영 쇄신" 입장문 내

▲ 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열사 SPL 평택공장 소속 근로자의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허 회장은 해당 사고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1000억원을 들여 그룹 전반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점검·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대 여성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시작된 ‘SPC 불매운동’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직접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을 넘어 근본적인 경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사망사고 8일째인 23일 온·오프라인에서 SPC 불매운동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SPC그룹의 멤버십 서비스인 ‘해피포인트앱’을 탈퇴하는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탈퇴 후 인증샷, SPC그룹 계열사가 적힌 불매 리스트 등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서울 송파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장모(43)씨는 이날 “(SPC그룹 계열사인) 삼립, 샤니 빵이 확실히 덜 나간다. 아까도 아이와 함께 온 손님이 ‘삼립 빵은 사면 안 돼’라더니 다른 제품을 사갔다”고 말했다. 유성원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 사무처장은 불매운동에 따른 매출 감소에 대해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다”며 “심각한 상황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느껴진다. 시간이 갈수록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매운동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로 주요 시점마다 SPC그룹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경영 마인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인식이 번지면서 불매운동의 동력을 스스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허 회장의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 회장은 지난 21일 사과문을 읽으며 “안전경영을 위해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선 것, 재발방지를 공언하며 구체적인 안전경영 투자를 약속한 것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만하다. 하지만 태도가 문제였다.

허 회장이 작은 목소리로 사과문만 읽고 질의응답 없이 기자회견장을 떠난 것 등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대국민 사과를 할 일이 아니라 유족과 직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SPC가 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인 안일한 태도도 불매운동의 불씨를 키웠다. 피해자를 기계에서 직접 꺼낸 사람들이 바로 옆 동료였다는 점, 그럼에도 사고 발생 하루도 되지 않아 사고현장에서 공장 운영을 재개한 점, 여론이 나빠지자 사고가 발생한 평택공장 문을 닫고 직원 일부를 대구공장으로 파견 보낸 점 등이 번번이 공분을 샀다.

특히 빵을 만들다 숨진 직원의 유족에게 장례용품으로 파리바게뜨 빵을 가져다 준 게 여론에 불을 지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SPC가 평소 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경영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집중됐다.


SPC 오너경영이 문제라는 지적도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오너기업의 경우 회장님께 어떻게 보고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곳도 있다. 소비자나 임직원 등의 여론보다 오너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경우 문제가 생기는 일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B2B(기업간 거래) 사업의 경우 소비자가 대체재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편의점 PB상품 가운데 빵, 샐러드, 샌드위치 등 SPC 제조상품이 적잖다. SPC와 거래하는 기업들이 당장 거래처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불매운동이 SPC 매출 타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일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매운동 동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불매운동은 매출 하락으로 기업이 타격을 입길 바라는 차원에서라기보다 ‘SPC가 환골탈태 수준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핵심에 있다. 반일 정서가 극대화된 시점에 시작된 ‘유니클로 불매운동’처럼 메시지가 분명한 소비자운동인 만큼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도 SPC 본사의 변화를 촉구했다. 가맹점주협의회는 지난 22일 입장문을 내고 “SPL 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질책에 저희 가맹점주들도 같은 마음”이라며 “본사에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안전경영강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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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