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정비계획 통과, 남은 과제는
서울 강남권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19일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지만, 재건축이 본궤도에 올라 속도를 내기엔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아파트 소유주와 단지 내 상가 소유주끼리 재산 분배 방식을 놓고 합의해야 하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단지 아래 지하로 지나는 것에 대한 주민 반발도 해결해야 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재건축 규제, 금리 인상의 충격으로 주택 경기가 더 침체하면 수익성이 나빠져 재건축 추진 동력이 약해질 우려도 있다.
◇첫 단추 끼웠지만 갈 길 먼 銀馬
1979년 입주한 은마아파트는 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라는 ‘명성’ 때문에 사업이 상당 부분 진척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법적 사업 주체인 재건축조합조차 아직 설립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추진위원회가 만든 정비계획안이 이번에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지만, 앞으로 조합 설립, 사업 시행 인가, 관리 처분 인가 등을 거쳐야 비로소 착공과 분양에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5~6년은 걸리는 절차이지만, 정부와 서울시 의지에 따라 행정 절차 기간이 대폭 단축될 가능성도 있다. 추진위는 내년 3월 조합 설립을 목표로 준비에 들어갔다.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단지 내 상가 소유주와의 협상이다. 통상 아파트 소유자와 상가 소유주가 각각 조합을 설립하지만, 사업 효율을 위해 재건축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 뒤 나중에 정산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상가 조합원의 재산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두고 내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강동구 ‘둔촌주공’ 등이 상가-아파트 소유주 간 갈등으로 재건축 사업이 지연됐다. 은마아파트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상가 소유주가 400명에 달하는 데다가 장사가 잘되는 가게도 많아 협상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GTX-C 노선(경기 양주~수원)이 은마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는 것으로 설계된 것도 본격적인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현행 계획이라면 재건축 후 은마아파트 33개 동 중 최소 10개 동 지하로 GTX가 지나게 된다. 이에 은마아파트 주민 사이에선 우회 노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여론을 의식해 지난 8월 GTX 사업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으로부터 우회 노선 검토안을 받은 상태다.
◇고금리·경기 침체에 사업성 악화 우려도
정부가 개편 의지를 밝혔지만,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규제가 여전한 것도 은마아파트 재건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금리가 오르면서 사업비 조달에 드는 금융 비용이 늘었고, 원자재 값 인상 여파로 공사비도 치솟고 있다. 반면 서울의 인기 주거지에서도 주택 수요가 급감하면서 청약 인기도 예전만 못하다. 이처럼 비용은 불어나는데 분양 수익으로 이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장기화하면 재건축 추진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남수 신한은행 행당동 지점장은 “민간 재건축도 사업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으면 무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며 “조합의 적정 이익과 무주택 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 확대 측면도 고려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심의 통과 소식에 서울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도 사업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의 한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강남 집값의 바로미터 같은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첫 문턱을 넘은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목동 재건축의 발목을 잡는 안전진단 규제도 조만간 현실적인 수준으로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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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