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4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단번에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지난 4월과 5월 각각 0.25%포인트씩 올린 데 이은 3회 연속 인상으로, 이 역시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이같은 극약처방으로 ‘인플레 파이터’ 본능을 강력하게 부활시킨 한은이 올해 남은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8·10·11월)에서 또다시 금리를 인상하면 올 연말 기준금리는 최대 3.00%까지 도달할 수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금통위는 이날 만장일치로 빅스텝을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5월 기준금리를 0.50%까지 낮췄던 금통위는 지난해 8월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를 인상하며 ‘통화정책 정상화’ 신호탄을 쐈고, 이후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4월, 5월에 각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이날엔 0.50%포인트를 인상해 기준금리는 2.25%에 이르게 됐다. 그간 한은이 ‘3회 연속 인하’에 나선 적은 있지만 인상에 나선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월까지(임시 금통위 포함) 6회 연속 금리 인하에 나선 바 있다.
◆물가 3분기 말·4분기 초 정점 예상= 한은이 ‘빅스텝’과 ‘3회 연속 인상’이란 이례적인 행보로 통화긴축 고삐를 바짝 죈 건 앞선 2회 연속의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에도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전보다 6.0%나 급등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까지 2%대를 기록했다가 올해 2월까지 3%대로 올라섰고, 3월과 4월엔 4%대를 나타냈다. 이후 5월에는 5%대로 뛰어올랐고 6월에는 6%벽마저 무너졌다.
문제는 이 같은 상승세가 아직 정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오는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대로 치솟아 정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7%대 전망이 현실화되면 물가급등기였던 1998년 10월(7.2%)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박석길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하반기 중 6%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어지다가 10월 7%대를 찍은 후 점차 하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앞으로 1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은 지난달 3.3%에서 3.9%로 올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으로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돼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향후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는 성장·물가 흐름, 금융불균형 누적 위험,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를 포함한 해외경제 상황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빅스텝이 기대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확산되는 국면에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중앙은행의 의지를 보이기 위한 행보로 평가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요인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더라도 국내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확산되면 임금-물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면서 "빅스텝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출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달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이 본격화된다는 점도 빅스텝을 촉발했다. 이날 한은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려 2.25%가 되면서 현재 미국(1.50~1.75%)의 금리보다 한국이 0.50~0.75%포인트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미 Fed가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전망대로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서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국보다 0.00~0.25%포인트 높아져 금리는 역전된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의 경우 금리가 역전되거나 좁혀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고 이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은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이창용 "앞으로 0.25%p씩 점진적 인상"= 이제 시장의 관심은 8월 금통위로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물가 상황에 맞서 8월에도 연속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1년 전 물가상승률이 2%대였지만 지금은 6%대로 크게 뛴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연속 빅스텝은 굉장히 이례적이긴 하지만 최근 물가 역시 이례적으로 급등한 상황이라 연속 빅스텝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인상은 경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조 연구위원은 "이달 빅스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상폭이 클 것으로 예상돼 한·미간 금리역전은 막을 수 없다"며 "올해 성장율이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하반기 경제 둔화 가능성이 높아 연속 빅스텝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미국이 금리를 0.75%포인트 올려 역전 되더라도 그 이후부터 외환시장의 특별한 이상징후가 없는 한 베이비스텝을 밟아 연말 금리가 3.0%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본다"면서 "급격한 인상은 경기침체를 심화하고 부동산 버블 붕괴, 가계부채로 인한 이자부담 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 경제를 받치고 있는 수출이 둔화되면서 무역수지가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과 최근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환율에 대한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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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