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동결에 한전 경영난↑···올해 20조~30조원대 적자 예상
위기의 한전, 정부에 SOS...산업부·여당 "인상 필요" 한목소리
전기료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요금 인상에 긍정적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 탓에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도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관건은 기획재정부다. 기재부는 그간 물가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에 난색을 표해왔다. 하지만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이번엔 인상에 무게가 쏠린다.
1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전은 전날 산업부와 기재부에 오는 3분기 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3원 올리는 내용을 담은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했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연료비 조정단가는 분기마다 정한다.
이번에 한전이 요구한 것은 연료비 연동제에 따른 최대 인상 폭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분기별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 중 연료비 조정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직전 분기보다 ㎾h당 ±3원, 연간으론 ±5원 조정할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안을 받아든 정부는 논의에 들어갔다. 통상 전기요금은 소관 부처인 산업부가 물가 전반을 관리하는 기재부와 협의해 정한다.
한전은 정부 결정이 나오는 대로 3분기 전기료 인상 여부와 폭을 발표할 계획이다. 발표 시기는 21일 전후가 될 전망이다.
한전이 연료비 조정요금 인상 요구에 나선 것은 잇단 전기요금 동결로 경영난이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규모는 7조7869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분기엔 5656억원 흑자를 냈지만 1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8조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은 역대 기준 최대다. 지난해 전체 적자액 5조8601억원보다도 2조원 가까이 많다. 분기 기준으론 4분기 연속 적자다. 순이익도 5조925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매출은 16조464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증가했다. 매출이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건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 구매비와 발전사에서 사 오는 전력 구매 비용이 크게 뛰어서다.
1분기 연료비 관련 비용은 7조6484억원으로 1년 전보다 92.8% 늘었다. 이 기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톤(t)당 132만7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42%, 유연탄은 191% 각각 올랐다. 지난 2월 24일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석유와 석탄, 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서다.
연료비가 고공행진하자 한전이 발전사들에 지급한 전력 구입비도 껑충 뛰었다. 전력 구입비는 10조5827억원으로 1년 새 111.7% 급증했다. 하지만 판매 가격인 전기요금은 제자리걸음이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2분기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전이 전기를 사 올 때 발전사에 내는 전력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ystem Marginal Price·SMP)은 지난 4월 ㎾h당 202.11원으로 사상 최초로 200원을 돌파했다. 한전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전력 단가(110원대)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5월엔 140.34원으로 다소 내려갔지만 여전히 전년보다는 77.4%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가 20조~30조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전이 연료비 조정단가를 통한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도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3원 올려달라고 했지만 무산됐다. 1분기에 이은 6개월 연속 동결이었다.
당시 산업부는 국제 연료비 상승에 따라 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물가 부담 등을 이유로 '적용 유보' 의견을 한전에 통보했다. 기재부가 난색을 보인 탓이다.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산업부가 공개적으로 인상 필요성을 밝히고 있고, 여당도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너지차관인 박일준 산업부 제2차관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뒤로 미룰수록 부담이 커지고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 역시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전 적자가 올해 특히 많이 늘어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전기요금에 원가를 반영하지 않고 (가격을) 눌러 놓으면 결국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며 인상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그 부분(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할 순 있지만 그럴 경우 시장 기능이 왜곡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적절히 판단해서 (하되), 전기요금 인상은 지금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관 부처와 여당이 전기요금 인상에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라 추 부총리 결단만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결정의 열쇠를 쥐고 있어서다.
추 부총리는 직접 전기요금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직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그것이 유효하지 않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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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