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가장 가혹한 형벌".. EU, 러시아 원유 수입 제한

해상 운송 수입 차단·헝가리 연결 송유관은 예외
러 수입 물량 3분의 2 감축.. 연말까지 90% 달성
EU 국가 간 수출금지 피해 격차로 형평성 논란
러시아, '저가 공급'으로 제재 무력화 가능성

▲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특별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왼쪽)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러시아산 원유 부분 금수 조치 합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한 달간의 진통 끝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현재까지 부과된 경제 제재 중 가장 파괴력이 큰 조치다. 다만 일부 나라에는 예외를 허용한 탓에 러시아가 제재를 회피할 여지를 남겨둔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제 유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EU가 어느 수준까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러시아 무기 구입 돈줄 차단... 가장 가혹한 형벌"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 부분 금지 등을 포함한 6차 러시아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러시아에 무기 비용을 대는 막대한 돈줄을 차단할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놀라운 성과”라고 자평했다. 아울러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ㆍ스위프트)에서 퇴출하고,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책임자와 군 지휘관에 대한 인적 제재도 단행하기로 했다.

EU는 앞서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러시아산 원유를 완전히 끊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일단은 해상 운송을 통해 수입하는 물량만 금지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EU가 러시아에서 조달하는 물량 3분의 2에 해당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독일과 폴란드가 송유관을 통한 수입 중단을 약속한 덕분에 올해 말까지 러시아 원유 수입을 90%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직 천연가스 제재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에너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 40%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에는 “가장 가혹한 경제적 형벌”이 될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이번 제재에서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한 수입은 제외됐다. 석유 65%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헝가리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EU가 러시아 원유 3분의 1을 공급받는 통로로, 벨라루스를 기점으로 갈라지는 북부 라인은 독일과 폴란드로, 남부 라인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체코로 이어진다. 마땅한 대체 공급처가 없는 내륙 국가들은 대안을 마련할 시간을 번 셈이지만, 제재 면제 기한이 정해지지 않아 향후 세부 협상 과정에서 또 다른 난항이 예상된다.

"러, 염가 공급으로 충격 피할 것" vs "산업 침체 만만찮을 것"


회원국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제재안이 통과되면서 EU는 분열 위기를 딛고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뒀다. 관건은 각 회원국이 고유가를 언제까지 버텨 낼 수 있느냐다. 공급이 감소하면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의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EU 역내 시장 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벨기에와 독일, 네덜란드 등 유조선으로 러시아 원유를 수입한 나라들은 비싼 값으로 대체 공급처를 구해야 하는 반면, 헝가리는 송유관으로 저렴한 러시아 원유를 계속 얻을 수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EU는 향후 논의할 세부안에 송유관 수입 원유 재수출 금지와 정제품 재판매 금지 등 보완책을 담을 계획이지만, 러시아는 '싼값 공급'을 무기로 제재에 균열을 내고 있다. 최근 러시아 우랄유는 배럴당 93달러까지 떨어졌다. 국제유가 지표인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에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30% 가까이 싸다. 덕분에 헝가리 석유회사 몰은 3월 이후 수익이 급등했고, 인도는 5월에 하루 70만 배럴 이상을 구입해 비축해 놨다. 심지어 유럽도 주요 고객이었다. 전문가들은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독일 등이 송유관을 통해 하루 평균 60만 배럴가량 공급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제재가 본격 발효되면 러시아도 적잖은 손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자재 정보업체 케이플러는 EU 금수 조치로 러시아 원유 생산량이 10%가량, 하루 1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타임스는 “주요 석유회사들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경제 제재로 서방 기술 유입이 가로막히면서, 러시아 에너지 산업이 광범위한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세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