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우크라 병력 철수? 서방 제재 풀고 무기 공급 중단부터"

프랑스·독일 정상과 80분 통화.. 젤렌스키와 직접 대화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아, "서방 제재 풀면 우크라 곡물 수출 보장 검토"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의 '우크라이나와의 휴전 및 병력 철수' 촉구에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28일(현지시간) BBC·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과 슐츠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 80분간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와 휴전 합의와 러시아군 철수를 촉구했다.


독일 총리실은 이날 통화가 마크롱 대통령과 슐츠 총리의 요구로 이뤄졌다며 "양국 정상이 푸틴 대통령에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직접' 진지하게 협상하면서 외교적 해결책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 엘리제궁도 성명을 통해 "전쟁에 대한 모든 해결책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으로 해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대화를 촉구했다는 점을 밝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대화 재개에 열려있다고 답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BBC는 전했다.

두 정상은 또 푸틴 대통령에게 세계 식량 위기로 번진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 봉쇄 해제도 요구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흑해와 아조우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내 주요 수출 경로를 차단했다. 이 여파로 세계 4위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량이 절반가량 줄어들며 주요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세계 식량 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세계 식량 위기는 서방의 잘못된 경제제재와 금융정책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 해제'를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지금의 대러시아 경제제재는 세계 식량 위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러시아의 헛소리에 속아선 안 된다"고 반박하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항구에서 수출 대기 중인 식량 2200만톤(t)의 수송을 물리적으로 차단한 것이 식량 부족과 물가상승, 기아 우려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에 무기 지원하면 상황 어려워진다" 경고

푸틴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을 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전쟁)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지원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서방으로부터 받은 무기들은 전선에 배치하며 전력을 보강하는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덴마크로부터 받은 하푼(Harpoon) 대함미사일을 자국의 해왕성 미사일과 함께 오데사항 등에 배치해 해안 방어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거리가 최소 90km 이상인 하푼 대함미사일은 수상 함정, 항공기, 잠수함 등에 탑재가 가능하다. 레즈니코프 장관은 또 "미국산 M109 자주포 등도 지원받아 이제 더 먼 거리에서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면서 "미국산 장거리 M270 다연장 발사시스템(MLRS)도 지원받고 싶다"고 전했다.

BBC는 이날 세 정상의 통화에 대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강력한 두 정상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정상 통화 관련 크렘린궁의 발표와 러시아군의 실제 행보는 대조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 슐츠 총리의 전화통화 결과를 전하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마리우폴에서의 러시아군 임무는 모두 '평화로운 삶'과 '해방'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BBC는 "마크롱 대통령과 슐츠 총리가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우크라이나군 인질 석방을 요구한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슐츠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 항전하다 러시아군에 전쟁포로로 잡힌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우크라이나 수비 병력 2500명의 석방도 촉구했다. 앞서 우크라이나군은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마리우폴의 최후 거점으로 삼고 러시아군의 공격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마리우폴에서 '작전임무'를 끝냈다고 발표했다.

한편 러시아군은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에서 마리우폴을 거쳐 돈바스 지역을 영구적으로 확보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계획 달성을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 소도시에 대한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군과 러시아가 지원하는 분리주의자들이 협력해 우크라이나 동부 소도시이자 철도 요충지인 리만을 '완전히 해방'했다고 밝혔다. 리만 함락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부지역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면서도 "결국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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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