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런·되팔이 여파로 브랜드 가치 하락
"친구 결혼식장에 갔더니 5명에 1명꼴로 샤넬백을 들었더라고요.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거금을 주고 샀지만 다음부터는 안 들고 싶어요."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던 샤넬의 브랜드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노숙런', '거지런'이란 불명예스러운 신조어에 이어 샤넬백의 희소성까지 떨어지면서다. 노숙런이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앞에서 노숙을 하다 백화점 문이 열리면 뛰어들어가는 것(오픈런)을 뜻하며, 거지런이란 돈이 없는 상황에서 상품을 갖기 위해 오픈런을 하는 것을 말한다. 소위 '강남 사모님' 사이에서는 "샤넬이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샤넬 시그니처 상품의 리셀(재판매)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대표 리셀 플랫폼인 크림에서 지난달 초 1400만원까지 치솟았던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 가격은 최근 1200만원대로 낮아졌다.
보이 샤넬 플랩백 미디움은 760만원대에 거래 중이다. 클래식 미디움과 보이 샤넬 미디움의 매장 가격은 각각 1180만원과 759만원이다. 수백만원씩 웃돈이 붙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통업계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오픈런 현상이 샤넬의 브랜드 가치를 추락시켰다고 보고 있다. 백화점 개장과 동시에 수십명이 매장으로 달려가는 '좀비런'이 샤넬백의 인기를 증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함부로 가질 수 없던' 샤넬의 격을 떨어뜨렸단 분석이다.
여기에 잇따른 가격 인상은 소비자에게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샤넬은 지난해 네 번의 가격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올해도 1월과 3월 두 번이나 가격을 올렸다. 제작비와 원재료 가격 인상, 환율 변동을 고려해 가격을 조정했다는 게 샤넬코리아 측의 설명이지만 소비자 사이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오래 전부터 샤넬백을 갖고 싶었다는 30대 A씨는 "몇 번이나 백화점에 가봤지만 원하는 제품이 없어 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가격은 계속 올라 차라리 이 돈이면 샤넬보다 우위로 평가되는 에르메스 가방을 사겠단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가격이 치솟는 반면 고객경험은 하락했다. 실수요자가 아닌 '되팔이족'의 매장 방문이 급증하면서다. 소비자가 고가의 명품을 구매할 땐 그에 상응하는 친절한 서비스와 여유로운 분위기를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샤넬 매장에서 이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온다.
지난해 말 샤넬 오픈런을 통해 가방을 구매한 회사원 A씨는 "나도 구매자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사야 하나'란 생각이 든 건 사실"이라며 "되팔이들 사이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섰고, 겨우 들어간 매장은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1000만원 가까이 돈을 쓰고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 길거리에서 3초에 한 번씩 보인다는 의미로 '3초백'이라 불리던 루이비통 백처럼 샤넬백이 굉장히 흔해지고 있다"면서 "진짜 부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샤넬만의 브랜드 희소성과 고객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을 제대로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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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