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향한 국제사회 사법적 압박 '총력전'...법조계 "종전 압박 효과"

ICJ 재판, 양국이 강제관할권 수락해야 열려..."회의적"
권오곤 전 ICC 당사국총회 의장 "국제법, 갈 길 멀다"

▲ 1일(현지시간)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검문소 앞 피란민 임시 수용시설 앞에서 담요로 온몸을 둘러싼 채 추위에 떨며 과자를 먹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의 책임 여부를 가릴 국제사회의 사법 절차가 시작됐다. 법조계는 러시아를 향한 사법 절차가 강제 집행력을 가질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종전 압박이 고조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오는 7일과 8일(현지시간) 헤이그 평화궁전에서 러시아의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혐의에 관한 공청회를 진행한다. ICJ는 영유권 등 국가 간 법적 분쟁을 취급하는 유엔 산하 기구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ICC는 집단학살과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심리하고 처벌하는 국제기구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를 ICJ에 제소했다. 우크라이나는 소장에서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하도록 명령하는 '잠정 조치'를 요청했다. 잠정 조치는 판결 전 분쟁당사국 권리 보호라는 긴급한 필요에 의해 임시적으로 취해지는 일종의 '가처분'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 지역에서 집단학살이 저질러졌다는 거짓 주장을 근거로 침공했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무런 증거 없이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서 대량학살 범죄를 저질렀다'며 군사행동을 정당화했다.


ICJ 제소로 침공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을까. 먼저 '재판관할권' 문제에 부딪혀 시작부터 난항을 겪을 수 있다. ICJ 규정 제36조는 '당사국은 다른 당사국이 자신을 제소할 경우 의무적으로 ICJ의 관할을 인정하겠다는 선언을 할 수 있다'며 사전 수락에 근거한 강제관할권을 규정한다. 러시아가 사전에 ICJ의 강제관할권을 수락했다면 우크라이나 일방의 제소로도 관할이 인정될 수 있지만, 러시아는 수락하지 않아 실제 재판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번 공청회에서 △재판관할권 범위에 있는지 △제노사이드 협약에 따른 잠정 조치가 가능한지 △ICJ 결정이 강제 집행력을 갖는지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제노사이드 협약(집단학살 방지 협약)'을 제소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해당 협약에 양국이 가입돼 있고 이에 따라 재판이 성립될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푸틴 대통령도 침공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세진 미국 뉴욕주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러시아가 관할권을 수락할 리 만무하다는 걸 우크라이나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며 "제노사이드 협약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가입돼 있다. 그래서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이 아니라 집단학살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근거해 임시처분을 신청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갑유 대표변호사(법무법인 피터앤김)도 "집단학살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라 다른 국가가 분쟁을 제기하면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ICJ 재판과 결정으로 이어지더라도 침공을 멈추는 데엔 또 다른 한계가 있다. 김갑유 변호사는 "재판까지 가도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는 것"이라며 "'국제법 위반'이라며 국제적인 압박을 주는 단계까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정현 한국외대 국제법 교수도 "원칙적으로 따라야 하지만 현실론으로 가면 한계는 분명히 있다"는 의견을 냈다.

권오곤 전 ICC 당사국총회 의장 "국제법, 갈 길 멀다"
최근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는 러시아군이 전투 과정에서 제네바 협약이 금지하는 집속탄과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이 이들 무기를 실제로 사용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ICC는 '전쟁범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조사를 시작했다. ICC는 예비조사를 거쳐 본 수사를 개시하고, 수사 결과 혐의자에 대한 충분한 증거와 증언이 확보되면 공식 기소한다.

ICC는 무력충돌이 발생한 우크라이나 측 동의만으로도 전쟁범죄 등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조정현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름반도 강제합병 당시 ICC 관할권을 사후로 인정한 것이 돼 예비조사에 들어간 것"이라며 "전쟁범죄에 대한 수사는 우크라이나의 관할권 동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처벌을 위해선 양국 모두 재판관할권을 인정해야 하는데 러시아는 지난 2016년 ICC에서 탈퇴했다. 권오곤 전 ICC 당사국총회 의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ICC에서 2017년 12월 '전쟁범죄'를 관할권 행사 대상으로 추가 결정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분쟁 당사국 양국이 다 회원국이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보리에 가도 러시아에서 '비토권'을 행사할 테니 전쟁과 관련해 국제법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다만 권 전 의장은 "우크라이나 측으로서는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차원"이라며 "이 사안에 대해 전 세계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시도를 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