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밭 된 경기도 농지, 평택은 외지인 매수가 84%

최근 3년10월간 토지 등기 분석
경기도 3건중 2건 외지인이 사
3기 새도시 시흥·광명도 높아

"농민 아니어도 소유, 온갖 예외
투기 부추기는 농지법 개정해야"

▲ 평택시 현덕면 황산리 모습. 사진 가운데 넓은 땅은 세 필지로 이뤄진 밭으로 일부에서 잔디 농사를 짓고 있다. 총면적이 2만6201㎡에 이르며 세 필지 모두 평택농장이 과반수 지분을 가지고 있다. 2016년께 다른 농업법인이 일부 지분을 사들여 전국 각지로 쪼개 팔았다. 현재 세 필지의 소유자는 각각 26명, 25명, 20명이다. 밭에서 길을 건너 사진 위쪽으로 보이는 공사 현장이 안중역 개발 예정지다. 
최근 3년10개월 동안 경기도 농지(논·밭·과수원) 매매 중 농지와 매수인 거주지의 시·군이 일치하는 경우는 3건 중 1건(35.6%)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2건(64.4%)은 외지인이 농지를 사들인 경우였다. 이처럼 외지인 매수 비율이 높은 것은 농지가 농사 목적보다 투기 목적으로 더 많이 거래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2일 <한겨레21>에 따르면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을 통해, 2017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경기도 전체 토지 거래 등기정보(경기도 등기 데이터)를 받아 분석했다. 이 데이터는 익명화됐지만 토지 매수인의 거주지 정보를 시·군·구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등기 분석 결과, 농지 거래가 활발하고 외지인 매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평택시(84.2%)였다. 그다음으로 시흥시(76.7%), 오산시(70%), 화성시(69.2%), 연천군(68.3%), 안성시(67.7%), 광명시(66.7%), 가평군(65.3%) 순으로 나타났다. 농지가 많고 농업인 비율이 높은 경기도 외곽 지역에서 외지인 매수 비율이 높았다. 지역 면적이 넓어 타 지역 사람이 오가며 농사짓기도 쉽지 않은 지역이다. 서울과 가까운 지역으로는 3기 새도시 부지로 선정된 시흥시와 광명시가 경기도 평균(64.4%) 이상으로 외지인 매수가 많았다. 동·리 단위에서 외지인 매수 비율이 90% 이상인 마을은 평택시(25곳), 화성시(10곳), 연천군(9곳) 등 경기도에서 총 63곳이었다(매매 10건 이상인 경우만 집계).

원칙적으로 농지는 농민만 소유할 수 있다(경자유전의 원칙). 헌법 제9장 제121조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농지법 제2장 제6조에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이런 규제는 농사가 식량안보와 국민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예외가 많아서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할 방법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첫째, 1996년 이전 취득한 농지다. 농민만 땅을 소유하도록 제한하는 농지법이 1996년 시행됐기에 그 전에 소유한 농지는 문제가 없다. 둘째, 상속·증여받은 농지다. 경기도 등기 데이터를 살펴보면, 3년10개월간 이뤄진 농지 상속·증여(유언증여 포함) 6만6686건 중 4만3597건(65.4%)은 외지인이 물려받았다. 셋째, 농업법인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무늬만 농업법인’이 많다. 경기도 반부패조사단은 4월26일 영농 의사가 없으면서도 농사짓겠다며 허위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뒤, 경기도 농지를 사서 개인에게 팔아넘겨 부당이익 1397억원을 챙긴 농업법인 26곳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넷째, 주말·체험 영농이다. 농지법상 1천㎡(300평) 미만 농지는 취미 목적으로 비농민도 소유할 수 있다.

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갈수록 줄고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농림어업총조사를 보면 전국 경지 면적 가운데 농업인 소유 면적은 2015년 기준 56.2%다. 20년 전인 1995년보다 10.8%포인트 줄었다. 많은 농민이 비농민의 땅에 임대료를 내고 농사짓는다. 헌법에서는 소작을 금지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농지법은 질병, 징집, 취학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대차를 허용한다. 그 외 불법적인 임대차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실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동네 주민이 공익제보를 하지 않는 이상, 행정공무원이 단속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평택시 황산리 서쪽 도대리에서 이장을 했던 주민 ㄱ씨는 ‘가짜 농민’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면 공식적인 ‘농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다. 농업인으로 인정받고 직접 농사지으면, 소유 농지에 대해 최대 2억원까지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 지주가 농사짓는다고 거짓 신고하면 피해는 소작인이 본다. 정부가 경작자에게 지원하는 ‘공익직불금’을 지주가 대신 받아가기 때문이다. ㄱ씨는 “직불금을 뺏긴다”고 표현했다. “소작인이 직불금 받으려고 임대차 계약서를 써달라고 하면 지주가 ‘당신 농사짓지 말아’ 그러면서 다른 사람한테 준단 말이야. 소작인은 손해 보면서도 어떻게 방법이 없어. 내가 볼 때 직불금 받는 소작인은 50%도 안 돼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 그럴 거요.”

농지의 부동산 투기화를 이대로 놔둬도 될까. 사동천 홍익대 법과대 교수는 2019년 논문(‘합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비농업 상속인이 농지를 불법적으로 용도변경한 경우 농지처분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서 농지법이 “(경자유전 원칙을 선언한)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며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는 △비농업인이 농지를 상속받은 경우 2년 내 농지 처분 의무화 △농업인이 타지로 이주해 농사짓지 못하는 경우 2년 내 농지 처분 의무화 △1996년 이전 농지 취득한 비농업인 2~5년 내 농지 처분 의무화 △농지 임차료의 법정 상한선 설정(생산량의 10% 수준) 등을 제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이후에 국회에서도 농지법 개정안 발의가 잇따른다. △비농업인의 농지를 모두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하거나 △주말농장 등 취미·여가활동은 농지를 소유하지 않고 임대차를 통해서만 가능(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하게 하는 등 각종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참여연대는 △전국 농지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와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 예외 제도를 대폭 정리하는 등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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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