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구청 민주당 장악해 큰 변화 어려울 듯"
참여정부 때 이명박 서울시장-중앙정부 엇박자 기억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재건축 규제와 공공 주도 도심 개발 등 정부의 집값 안정화 정책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와 서울시를 서로 다른 정당이 이끌게 되면 사안마다 충돌할 가능성이 다분한 가운데, 오세훈 후보는 핵심 공약으로 민간 재건축 활성화를 내세워 공공 주도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정부 입장에선 여간 껄끄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오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다양한 부동산 규제 완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 활성화로 18만5천호의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은 정부의 2·4 대책 등 공공 주도 개발 사업을 정면에서 부정한다.
2·4 대책에서 제시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나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사업'은 물론, 작년 5·6 대책과 8·4 대책에서 나온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인 요소다.
특히 이들 사업은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유지돼야 반사적인 매력을 갖는다.
현재 이들 새로운 사업 방식에 대한 지자체의 참여 의사가 많고 조합 등 민간의 관심도 뜨거운데, 그것은 규제가 중첩된 민간 주도 사업으론 도저히 사업성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합이나 토지주 등이 시어머니 같은 LH 등 공공기관이 사업에 끼어드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고 임대주택도 기꺼이 지어서 기부채납한다는 것이다.
오 후보의 공약대로 민간 재건축 재개발 사업의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면 조합으로선 공공 주도 사업에 기댈 이유가 없어진다.
물론 서울시장이 야당 정치인으로 바뀐다고 해서 2·4 대책 등 정부의 핵심 부동산 정책이 갑자기 멈추거나 할 수는 없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서울시가 '마이웨이' 식으로 정책 방향을 틀려고 해도 단독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서울시내 구청과 서울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가 부동산 정책을 자신의 목소리를 넣어 수정하려면 조례 개정이 필요한데, 더불어민주당이 전체 109석 중 101석을 점유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시의회 설득은 쉽지 않다.
다만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과 결이 다른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는 등 중앙정부와 다른 색깔을 내기 시작하면 정책 방향을 둘러싼 시장의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과거 참여정부 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중앙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두고 종종 힘겨루기를 벌인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4~2005년 뉴타운 정책을 두고 벌어진 주도권 싸움이다. 당시 중앙정부도 강북 개발을 염두에 둔 '도시구조개선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이 전 시장이 '뉴타운 특별법'을 먼저 꺼내들며 엇박자를 냈고 그 결과는 시장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 전 시장은 재건축 단지의 안전진단 권한을 구청에 위임하는 등 정부 규제책을 무력화하는 크고 작은 정책을 내놓고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힘겨루기는 여당 시장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 대권 주자로 뽑혔던 박원순 전 시장도 '여의도·용산 통개발 방안' 등 중앙정부와 다른 방향의 정책을 내놓았다가 중앙정부와 어색한 관계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만큼 서울시의 행정력이 파급력이 크고 권한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시도 집값 안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서울시와 협력적인 관계를 갖고 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서울시장이 바뀐다는 것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부동산 정책이 워낙 뜨거운 이슈로 부각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추진에 일정 부분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부동산 정책 평가전이라고 할 정도로 집값 문제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큰 화두가 됐고, 민주당 박영선 후보도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 정도였다.
실수요자에 대해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됐고, 정부 부처들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한 상황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가파르게 올랐다는 지적과 함께 재산세 등 세금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선거가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부동산 규제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보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일단 현재 서울시와 구청, 의회의 역학관계를 봤을 땐 서울시장이 바뀐다고 해서 당장 큰 변화는 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시가 정책 변화를 꾀하려면 조례를 바꿔야 할 텐데 서울시의회를 민주당이 점유하고 있어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다만, 기존 규제를 무력화하겠다는 발표가 나오거나 지자체 차원의 규제 완화가 병행된다면 수요자는 정부의 공공 주도 정비사업 참여를 미루거나 관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서울시장의 권한이 한정돼 있고 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자리가 6개밖에 없어 당장 부동산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시의회가 처음에는 오세훈 시장과 거리두기를 하더라도 시의원들도 지역구 민원을 무시할 순 없기에 재건축 규제완화 등에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도심 주택 공급의 가장 큰 채널인 재건축·재개발에서 민간 방식이 좀 더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과도한 기대감으로 시장이 과열되면서 단기적으로 시장불안이 야기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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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