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열풍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 여파가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이른바 `서학 개미’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거래하는 해외 주식 규모가 늘어나면서 환시에 유입되는 관련 환전 물량도 덩달아 늘어나 원∙달러 환율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학 개미들이 지난해 이후 꾸준한 순매수를 기록하면서 환율의 하락 압력을 완화시켜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율을 끌어올리기도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학 개미들이 본격적인 해외 주식 순매수에 나선 것은 지난해 4월로,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외화증권예탁결제 주식 순매수 금액은 22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6월을 제외하면 연말까지 매달 10억 달러 이상의 순매수가 기록됐다. 올해 들어서는 순매수세가 더욱 가파르다. 이달 20일까지 벌써 28억9000만 달러를 순매수했다.
이와 맞물려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서학 개미들의 투자 자금 환전 수요가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통상 외환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투자 관련 물량이 기업들의 수출입 대금 환전 물량과 함께 주된 수급 요인으로 작용한다.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매수하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서 원화 강세(환율 하락) 요인이 되고, 반대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팔면 이 때 발생하는 달러 수요가 원화를 약세(환율 상승)로 이끈다. 그런데 서학 개미 열풍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관련 수급이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주식 매매 관련 물량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들의 순매수 규모가 커지면서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환율 하락 압력을 완화시켜 주거나 때에 따라서는 환율을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A 증권사의 외환딜러는 “주로 달러 매수 쪽으로 작년부터 조금씩 물량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하루에 몇 천만 달러씩 나오기도 한다”면서 “최근에 보면 환율이 이 물량들 때문에 덜 빠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B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는 “확실히 외환시장에서 증권사들의 거래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과 삼성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몇 년 전부터 자체 채권·외환·상품(FICC, Fixed Income·Currency·Commodity) 부서 내에 외환 거래를 담당하는 인력과 시스템을 준비하고 직접 서울 외환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은행권 외환딜러들의 증권사 이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면 키움증권 등 자체 거래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증권사들은 일반 시중 은행들을 통해 환전 물량을 처리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서학 개미들의 경우 추세적으로 꾸준하게 해외 주식을 순매수하고 있어 이제는 외환시장에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실제 외환시장 수급상으로도 느껴진다”면서 “개인들이 작년에 200억 달러가량을 순매수했다는데, 올해 그 이상 간다면 절대로 무시 못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가 450억 달러 정도였으니까 이 정도면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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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