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는 16년 전 ‘루보’ 업그레이드 버전
통정 매매·장기 매집 등 닮은꼴
“역사는 반복되고 수법은 진화한다.”
최근 터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조작 사건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SG증권 사태와 큰 틀에서 유사한 주가 조작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수법이 더 고도화되고 치밀해졌다. 제2,3의 SG증권 사태가 일어날 구멍도 여전하다. 주가 조작을 근절하려면 ‘패가망신’할 정도의 처벌 시스템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16년 전 ‘루보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투자자를 다단계 방식으로 끌어모은 점, 매수·매도자가 가격을 미리 짜고 거래하는 ‘통정 매매’ 방식을 활용한 점, 특정 주가를 장기간 조금씩 끌어올리는 ‘장기 매집’을 한 점 등이 유사하다. 당시 조그만 자동차 부품 회사였던 루보 주가는 6개월 만에 1200원대에서 5만원 선으로 뛰어올랐다. 이후 11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2000원까지 대폭락했다.
16년 뒤 수법은 훨씬 교묘해졌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세력은 금융당국의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해 투자자 휴대폰을 들고 집·사무실 주변에서 거래를 했다. 주가도 3년에 걸쳐 조금씩 끌어올렸다. 또 재무적으로 문제가 없는 회사를 타깃으로 삼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7일 “하루에 0.5%~1.0% 정도의 주가 상승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이라며 “제보가 없었다면 당국이 과연 인지할 수 있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 수법을 막는다고 해도 향후 주가 조작이 근절될 지는 미지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례로 해외 계좌로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해 거래를 하면 조작 세력인 매수·매도자를 알 길이 없다”며 “이같은 거래는 다른 금융상품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식 시장이 적은 자본으로 시세를 조종하기 최적의 환경이라는 점도 근절을 어렵게 만든다. 시가 총액이 100억원인 회사라면 20억~30억원만으로도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안 교수는 “주식 유통 물량이 작은 회사들은 언제든 주가 조작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황급히 한국거래소 이상거래 탐지 기능 강화, CFD 관련 규제 강화 등 제도 보완에 착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보다 주가조작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처벌 수위가 낮고 부당 이익 박탈·환수 등 경제적 제재 수단도 미흡하다 보니 재범 사례가 나온다는 지적이다. 루보 사태 주범도 출소한 뒤 또 다시 주가조작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회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법사위에는 징벌적 과징금 부과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는 상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증권 범죄에 가담한 경우 최대 10년간 계좌 개설·주식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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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