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보험 ‘공시가의 126% 이하’로…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 속출할 듯

5월부터 새로운 기준 적용
사실상 보증금 상한선 둔 셈
거래 경색·공시가 하락 겹쳐
보증금 분쟁 늘어날 가능성

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전세보증금이 ‘주택 공시가격×126%’를 넘어서면 안 된다. 부동산 업계에선 “사실상 정부가 전세보증금 상한선을 정해준 셈”이라고 보고 있는데, 공시가격 하락에 ‘126%’ 상한선까지 생기면서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빌라 임대사업자 A씨가 보유한 서울 광진구의 한 역세권 빌라(전용 47㎡)의 올해 공시가는 1억144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억3400만원 수준이던 공시가가 2017년(1억1800만원) 수준까지 내려간 셈이다.


A씨는 “세입자가 6월에 나가겠다고 통보한 상황이라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빌라는 팔리지도 않고 대출도 안 나와서 보증금을 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A씨가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은 3억원이다.

30일 HUG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세사기’ 방지 대책으로 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조정했다. 주택가격 산정기준 역시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추면서 결과적으로 ‘공시가격의 126%(140%×90%)’까지만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B공인중개사는 “공시가격은 18% 이상 떨어지고,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빌라는 아예 거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이 동네도 그것 때문에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은 보험에 가입한 임차인이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HUG가 대신 보증금을 내준 뒤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서울 양천구 화곡동의 C공인중개사는 “작년까지 누가 봐도 보증금 3억원이 가능했던 ‘방 3개·화장실 2개’짜리 집들이 지금 공시가격 기준으로 전세보증금을 따지면 1억6000만~1억7000만원밖에 안 된다”면서 “집을 서너 채만 갖고 있어도 집주인이 새로 줘야 할 보증금이 1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들은 A씨처럼 당장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지는 사례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임대업을 해온 집주인들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계약만료와 동시에 돌려줘야 하는 돈’으로 인식하지 않고, 매번 다음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통해 충당하는 방식으로 돌려줘왔기 때문이다. 새 임차인을 구하더라도 보증보험 가입기준 강화로 기존 계약보다 보증금이 크게 낮아질 경우,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졸지에 ‘전세사기범’으로 몰리는 상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광진구 자양동 D공인중개사는 “정부에서 주택가격 산정기준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10%포인트 내릴 때에는 6~7개월 이상 시간을 주고 안정화가 된 뒤에 적용을 해서 시장에 큰 충격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단기간에 비율을 126%까지 내린 데다 공시가격까지 18%(서울지역 평균 -17.32%)나 하락하니 빌라 임대업자들이 받는 충격은 말도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 어떤 분은 전세금 대출이자 10만~20만원을 본인이 내주면서 버티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세입자 입장에서는 HUG보증보험에 가입 못한다 생각하면 이자지원이 문제가 아니다보니 ‘나가겠다’고 하고 있고, 집주인들은 졸지에 전세사기범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