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회의 24일로 연기 ‘심사숙고’
가격 인하 효과 놓고 입장차 여전
정부 “충분한 시간 두고 의견 청취”
정유사들의 휘발유 등 석유제품 판매가격(도매가격)을 지역·주유소별로 더 자세히 공개하는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심사숙고에 빠졌다. 기름값 안정을 기대하는 정부와 지나친 영업비밀 공개라는 정유업계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최대 쟁점은 가격 인하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다. 이 문제를 따져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의 심의 일정은 당초 10일에서 회의 이틀 전에서야 오는 24일로 돌연 연기됐다. 지난달 24일 첫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해 재심의를 하는데, 또 일정을 미뤘다.
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규개위 경제1분과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입법예고해 내부 심의를 거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정안은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의 석유제품 가격 공개·보고 범위를 광역시·도, 대리점·주유소까지 확대하는 걸 뼈대로 한다.
현재 정유사들은 전국 평균 판매가격만 공개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지역·주유소별 판매가격을 세분화해 공개해야 한다. 규개위를 통과하면 법제처 심사·국무회의 의결만 남는다. 하지만 개정안은 규개위 문턱에 걸려 있다. 정부 관계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일정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실제 기름값 인하 효과가 얼마나 될지를 두고 정부와 업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산업부는 정유사들이 각 지역과 개별 주유소 등에 판매하는 도매가를 공개하면 시장 경쟁이 촉발된다고 본다. 통상 휘발유·경유는 지역별로 ℓ당 100원 안팎의 가격 차이를 보인다. 각 주유소는 현재 자신들이 공급받는 석유제품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다. 산업부는 “이미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등으로 주유소별 실시간 가격을 따지는 상황에서 정유사별 판매가격이 공개되면 전체적인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유 4사는 국내 시장의 98%를 점유한다. 주유소와 정유소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려면 세분화해 가격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정유사들은 구매 원가, 경영전략 등을 반영한 판매가격이 세부적으로 드러나면 오히려 영업기밀 노출을 꺼리게 돼 ‘가격 상향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판매가격을 다른 형태로 떠넘기거나, 초기 경쟁에서 살아남은 주유소 등이 암묵적으로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또한 정유업계는 “영업비밀을 고스란히 내놓으라는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한다. 도매가 공개로 출혈경쟁이 벌어지면, 정유 4사 중 지배력이 큰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석유사업법 38조2항은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판매가격을 공개하도록 한다. 이에 업계는 시행령 개정안과 상위법이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2011년에 영업비밀 침해 우려로 철회됐던 정책”이라며 “규개위 심의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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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