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부른 금융소득 '부익부 빈익빈'
"카페 아메리카노도 탕비실 믹스커피로 바꾼지 오랜데. 적금은커녕 예금이 가능하겠어요?"
30대 회사원 A씨는 '5%대' 정기예금에 가입하겠다며 은행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기사만 보면 허탈감을 느낀다. 매달 260만원에 달하는 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예적금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주택구입을 위해 연 3.9%에 받았던 신용대출 금리가 매년 오르더니 연 6.5%까지 뛰었다. 그나마 주택담보대출은 5년 고정형으로 받아 연 4.98%를 유지하고 있지만, 다달이 월급의 절반이 넘는 돈을 은행에 그대로 내고 있어 생활비까지 줄였다.
금리가 계속 오르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여유 자금이 있는 이들은 고금리 예금에 가입해 혜택을 보는 반면, 생계비나 주거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이들의 이자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5%를 돌파했다. 저축은행은 연 6%가 넘는 특판 상품까지 등장했다. 10억원을 넣으면 세금을 내도 1년 이자만 4000만원이 넘는다.
예금금리는 더 오를 전망이다. 시장에선 한국은행이 24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p가량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물가와 환율이 조금씩 잡히면서 한은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인상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유동성 관리를 위해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하란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 인상폭이 줄뿐 기준금리가 오르는 이상 예금 고금리 현상이 이어질 거란 전망이 중론이다. 여유 자금이 있어 정기예금에 돈을 넣을 수 있는 '현금부자'들에겐 행복한 소식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은행들엔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올해만 166조6107억원 늘었다. 지난해 1년간 증가한 금액이 40조5283억원이었는데, 올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4배 이상 증가했다.
10억원 이상 예치된 정기예금 계좌 수도 늘고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예치금액 10억원이 넘는 정기예금은 지난해 하반기 4만4000좌에서 올 상반기 5만좌로 증가했다. 2002년 통계를 처음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5만좌를 넘어섰다.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을 넘는 종합과세 대상자도 늘어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은행 예금 금리가 연 2%대일 때는 10억원을 넣어야 이자 2000만원이 붙어 과세 대상이 되지만, 연 5%대에는 4억원만 넣어도 대상이 된다.
반면 대출 차주들은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 펼쳐진다. 18일 기준 5대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5.28~7.80%로 집계됐다. 고정금리(혼합형) 금리는 연 5.20~7.11%로 나타났다. 전세자금대출은 연 5.23~7.86%였다. 고신용자 신용대출은 연 6.14~7.46%에 달했다. 모두 하단이 5%를 넘어섰고 상단은 거의 8%대에 이른다.
금리가 계속 오르며 대출이 있는 가계와 기업은 이제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8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될 경우 내년말까지 국내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자 연간 부담액이 올해 9월말과 비교해 33조6000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취약차주의 연간 이자부담액이 330만원 가량 늘어나 생활고가 극심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금리인상에 취약한 한계기업 역시 연간 이자부담액이 올해 9월 5조원에서 내년말 9조7000억원으로 94.0% 급증할 것으로 봤다. 육가공업체를 운영하는 30대 B씨는 "대출 이자도 너무 오르고 돈이 안 돌아 신규대출도 안나오는 상황이라 거래처 대금지급이 밀리기 시작했다"며 "정말 줄도산이 코앞에 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