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열린 금융감독자문회의에서 “글로벌 경제 불안이 한국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국내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그간 걱정하던 '퍼펙트스톰'이 현실화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대내외 충격에도 자금 중개 기능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손실흡수능력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퍼펙트스톰’에 대한 정 원장의 우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 원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한계기업·자영업자의 부실 확대 가능성, 거품 우려가 제기되는 자산의 가격조정 등 다양한 리스크가 일시에 몰려올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에 걸쳐 시장에 '퍼펙트스톰'에 대한 경고음을 내왔다. 이달 초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도 선진국의 경기침체, 신흥국의 디폴트 위험 확대 등을 거론하며 '불안감 가중'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같은 날 첫 공식 행보에 나선 김소영 신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금융리스크 현실화를 경고하고 나섰다. 김 부위원장은 “부임 첫 일정으로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개최할 만큼 우리나라를 둘러싼 대내외 경제·금융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평가한 뒤 "당면한 금융불안 요인들에 대해 긴밀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당국자들의 이 같은 발언은 금융권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손충당금'은 금융권이 향후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자금을 말한다. 올해 1분기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금융의 대손충당금 전입액(총 7098억원) 규모는 전 분기(1조4786억원) 대비 절반(52%)가량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은행권 역시 할 말은 있다. 현재 은행권 총대출 중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은행권 부실채권(NPL) 비율은 5대 시중은행이 0.2%대를 기록하고 있고, 은행들이 부실 대출을 털어내기 위해 충당금을 활용할 수 있는 비율(NPL 커버리지 비율)도 평균 200%를 웃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충당금을 많이 적립할수록 비용이 늘어 은행을 비롯한 금융지주 순익은 줄어들게 된다. 또한 대손충당금이 투자자에 대한 배당과도 연결돼 과도한 대손충당금은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잠재 신용위험을 보수적으로 평가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계부채 규모가 1800조원에 이르는 가운데 높은 변동금리 비율로 인해 부실이 현실화될 가능성, 최근 물가와 금리 인상 이슈뿐만 아니라 코로나 관련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 만기 연장, 상환유예 조치가 끝나는 오는 10월부터는 부실 대출이 급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만기 연장, 상환유예 조치를 받은 대출 원리금은 29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코로나 금융지원 종료 등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실 등에 대비해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아오고 있다"면서 "시장 상황을 검토하면서 자본력을 유지하는 노력과 함께 그에 맞는 주주환원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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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