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 커졌던 韓美 종전선언...北도발로 물거품되나

▲ 문재인 대통령(왼쪽),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새해 남·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발사체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새해 들어 첫 무력 시위로, 지난해 10월 1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잠수함에서 시험 발사한 이후 78일 만이다. 구체적인 제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년 1월 당 대회에서 국방력 강화를 위한 5개년 계획을 천명한 이후 속도를 내고 있는 새 무기체계 개발의 일환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도 이날 오전 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고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상 단거리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안보 상황 점검과 대응 방안 협의를 진행했다. NSC 상임위원들은 국내외적으로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이번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발사체의 세부 제원에 대해 한미 국방 및 정보당국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분석해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아울러 NSC 상임위원들은 현재의 남북관계 경색과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 美, 한·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 일축 다음날 北미사일 도발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전날 미국 정부가 올해 3월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을 일축한 다음날 진행돼 주목된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하고 종전선언과 남북 및 북미대화 견인을 위해서는 이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날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3월 한·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에 대해 "한·미 안보협의(SCM) 회의에서 논의된 훈련 일정에 변화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한·미 동맹은 최고의 준비태세를 유지해 한국을 위협이나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를 지속할 것"이라면서 "한·미 연합훈련은 한·미 양국 간 결정사항이며 모든 결정은 상호 합의로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번 도발을 통해 이중기준 철회를 촉구하려는 목적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2021년 9월 25일 담화를 통해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9월 25일) 담화의 요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실험이 정당한 행동이므로 도발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라며 "한국의 중기국방계획과 유사하게 국방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계속해서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발사도 이러한 연장 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또한 국방발전 계획 2차연도에 접어든 시점에서 올 한해 수립한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말 당 중앙위 8기 4차 전원회의에서 "군수공업부문에서는 당 제8차대회 결정을 높이 받들고 이룩된 성과들을 계속 확대하면서 현대전에 상응한 위력한 전투기술기재개발생산을 힘있게 다그치며 국가방위력의 질적변화를 강력히 추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신년사를 통해 대남, 대미 메시지 대신 "국가방위력 강화를 잠시도 늦춤 없이 더욱 힘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부각하면서도 대남, 대외 전략에 대해선 유보적 태도를 보였지만, 이번 무력 도발로 인해 올해 한반도 정세가 대화보다는 대립에 방점이 찍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 교수는 "비록 핵·전략 무기라는 언급은 없었지만, 기존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읽힌다"며 "대외환경과 무관하게 자위력 발전 차원에서 제도화된 계획에 따라 미사일 실험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2월 베이징 올림픽, 3월 한국 대선과 같은 외적 상황과 분리하여 일상적 차원에 따른 무기 개발로 치부하여 도발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北 도발에도 文 대통령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결실을 얻기 위한 노력"

남북관계가 교착된 가운데 북한이 또다시 군사 도발을 단행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결실을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 건설사업 착공 현장을 찾아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대한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아침 북한이 미상의 단거리 발사체를 시험발사했다"며 "이로 인해 긴장이 조성되고 남북관계의 정체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가 교착 상태에 있지만 임기 말까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하면서 평화 구축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제안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북한이 무력 도발에 나서면서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종전 선언 추진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종전선언 언급을 제외하면서 정부가 남북 대화의 기반을 깔아 다음 정부로 종전선언을 계승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날 청와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북한의 행위를 두고 '도발'이라는 규정을 하지 않았다. 앞서 NSC 상임위는 지난해 9월 15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을 때는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발사 도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북한을 도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도 역시 기본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종전선언 언급은 최대한 삼가는 분위기다. 미국 정부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사실상 합의된 상태"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미국 측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북측의 호응이 없는 데다 미국 정부 안팎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미국 정부는 대화와 외교라는 기본 입장을 되풀이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4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 데 전념하겠다"며 "미국과 동맹, 주둔병력의 안보를 증진할 진보를 이루기 위해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법의 일환으로 계속 북한과의 관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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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