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머니’ 대이동…수익률 찾아 은행서 증권사로

▲ [사진=우리은행 제공]
퇴직연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저금리 지속에 따른 낮은 수익률로 은행권의 점유율이 정체하고 있는 사이, 증권사들이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급성장했다. 증시 활황을 타고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증권사 퇴직연금 상품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퇴직연금 시장에서의 머니무브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사업자(은행·금융투자·보험) 43곳의 올해 1분기 적립액은 총 255조330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적립액이 252조3304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개월 새 3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아직까진 은행(132조2507억원)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증권사들의 성장세가 매섭다. 올 1분기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총 53조5084억원을 기록해 작년 말보다 3.57%(1조8479억원)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은행권이 1.38%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도 비교된다.

은행에서 증권사로 퇴직연금 자금 이동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시장이다. 올 1분기 개인형 IRP 적립액은 은행과 증권사가 각각 26조4498억원, 9조5217억원을 기록해 은행이 독보적인 듯하지만, 점유율을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다.

개인형 IRP 시장에서 증권사의 점유율은 지난해 말 21%에서 올 1분기 24.4%로 3% 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반면 은행권 비중은 같은 기간 69%에서 67%로 2% 포인트나 하락했다.

퇴직연금 시장에 머니무브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저금리 기조, 증시 호황에 따라 은행과 증권사 간 수익률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을 통해 퇴직연금에 가입하고자 하는 고객들은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 예·적금 등으로 연금을 굴리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주로 가입한다. 실제로 전체 적립금에서 원리금보장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하며 실적배당형은 10%에 불과하다. 이러한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 예·적금 금리가 0~1%대에 머무르면서 은행권 퇴직연금 수익률(장기)은 2%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증권업계는 증권사를 찾는 고객 특성상 공격 투자형이 많아 전체 적립금에서 실적배당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높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확정기여(DC)형, 개인형 IRP에서 실적배당형 적립금이 원리금보장형 적립금을 뛰어넘는 상황도 발생했다. 증권사의 실적배당형 퇴직연금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시 활황에 따라 올 1분기 최대 30%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은행권과 최대 10배에 달하는 수익률 차이가 발생, 가입자 입장에서는 증권사를 통한 퇴직연금 가입이 노후보장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에서는 퇴직연금 고객 이탈을 막고 신규 고객을 확보하려는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증권사들은 증시 호황을 타고 퇴직연금 점유율 확대를 위해 ‘수수료 무료’를 내세웠다. 0.1~0.5% 수준으로 부과하던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가입자에게 안 받겠다는 것이다. 은행권도 이에 대응해 퇴직연금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경품 이벤트를 진행하며 고객 이탈 방어전에 나섰다.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은행 및 증권사의 신경전은 최근 들어 디폴트옵션 도입, ETF 직접매매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금융권에서는 퇴직연금 운용 제도 도입을 두고 은행과 증권사가 이견을 보이고 있어, 해당 제도 도입이 완료되면 업권 간 경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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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