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 총수, 청와대서 만남…이재용 사면론 거론 주목
“한·미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낸 데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 결단이 한몫했다. 대통령이 이제 국내에서 기업들에 화답할 때가 아닌가 싶다.”
A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2일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총수의 오찬 회동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4대 그룹 총수와 별도로 식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초청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은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김기남 부회장이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과 4대 그룹 총수 오찬 회동 다음 날인 3일에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5개 경제단체 회장과 만난다. 재계는 이번 잇따른 회동을 기점으로 현 정부가 얼마나 친기업적인 정책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회동의 최대 화두는 4대 그룹이 주도하는 국내 고용 및 투자 활성화를 뒷받침할 정부의 지원책이 될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주요 대기업 현장을 많이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업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며 “특히 최근 미국에도 상당한 투자를 한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 지원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귀뜸했다.
그동안 현 정부는 경제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기보다는 공정 분배의 적으로 삼는 등 거리를 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친기업적으로 변한 모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된 직후, 지난 3월 31일 상공의 날에 문 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기업과의 소통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이호승 정책실장 등 청와대 인사들이 잇달아 경제인들과 만나 고충을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 수행단으로 참여한 주요 대기업들이 총 4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정부가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달라졌다고 분석한다. 자사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톱티어 반열에 오른 국내 기업들의 역할론을 조 바이든 대통령마저 박수갈채로 성원한 영향이 크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규제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의 투자와 성장에 발목을 잡는 정책과 입법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주요 대기업들이 혁신을 멈추지 않은 성과를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정한 셈”이라며 “이제 우리 정부도 채찍 대신 당근을 줄 때가 됐다”고 전했다. 기술 내재화를 추진 중인 세계 선진국들이 정부과 기업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며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우리 정부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발표한 K-반도체 벨트 추진 전략을 이끌 삼성전자와 관련해 '사면 카드'를 이날 회동에서 꺼내들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경제계뿐만 아니라 종교계, 지자체,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에 그동안 사면 검토는 없다고 못 박았던 청와대의 기류도 바뀌고 있다. 문 대통령도 최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공감대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의 입지가 예전만 못한 상태에서 ‘총수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경쟁력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 부회장 사면과 관련해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문을 연 것이 유의미한 부분”이라며 “이번 회동에서 4대 그룹 총수들이 (사면론을) 언급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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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