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때만 개인정보 보겠다"에 "정보 강제수집·조사권 자체가 문제"
"한은도 빅브라더"에 "은행 내부거래 내역 수집 안 한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갈등 중인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설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한은이 개인 거래정보 수집·남용 소지를 들어 금융위의 개정안을 '빅브라더(사회 감시·통제 권력)법'으로 규정하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나친 과장이다. 조금 화난다"며 직접 반박했고, 다시 이틀 만에 한은이 재반박에 나섰다.
앞서 19일 은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 전화 통화 기록이 통신사에 남는다고 통신사를 빅브라더라고 할 수 있느냐"며 "(한은의 빅브라더 지적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 빅테크(거대 정보통신업체) 지불·결제수단을 통한 개인의 충전·거래내역 등이 모두 금융결제원 한곳에 수집되고, 이를 금융위가 들여다볼 수 있는 개정안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한은 지적에 대한 반론이다.
하지만 한은 고위관계자는 21일 은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 "개인정보 강제 수집·조사권이라는 개정안 핵심과 전혀 관계없는 통신사 통화정보를 예로 든 것은 명백한 오류"라며 "통신사들의 통화기록도 만약 개정안처럼 강제적으로 한곳에 모아 놓고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면 역시 빅브라더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금융) 사건이 있을 때 금융당국이 법에 따라 자료를 받아 누가 자금의 주인인지를 보려는 것"이라며 개인 거래정보 관련 개정안 내용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한은은 이것 역시 "못 믿겠다"는 반응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빅브라더 이슈는 국민의 일상적 거래에 관한 막대한 정보를 강제적으로 집중시키는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경우로 한정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에 대한 감독권, 자료제출 요구권 등을 통해 금융결제원 보유 거래정보에 지나치게 광범위한 접근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게 법무법인 등의 의견"이라고 반박했다.
한은 논리대로라면, 한은 스스로 빅브라더라고 자인하는 셈이라는 은 위원장의 지적도 사실과 다르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은 위원장은 "현재 개인의 자금이체 정보도 금융결제원으로 가는데, 결제원을 지금 한은이 관장하고 있다. 한은이 스스로 빅브라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은행 안에서 주고받는 내부거래 내역은 결제원에 전송되지 않고, 타행으로 송금하는 외부거래의 경우도 자금 이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결제원에 전송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결제원은 현재 서로 다른 금융기관이 연결된 외부거래 처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공유한다"며 "이와 달리 개정안은 인터넷 쇼핑 내역 등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과 관계된 거래 정보가 담긴 빅테크 내부거래까지 수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은 위원장의 공개적 반박 내용이 확인되자, 이후 한은은 내부 회의 등을 통해 재반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이런 의견과 입장을 공유했다. 이 내용은 이주열 총재에까지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8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이 총재와 은 위원장은 회의 후 따로 만나 약 30분간 비공개로 환담했다. 이에 따라 두 기관 사이 주요 현안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관련 갈등도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오히려 두 수장의 만남 이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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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