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ㆍ고금리 여파에 지난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 이상(42.5%)은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취약기업’으로 나타났다. 취약기업 비중은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경영난에 빚을 낸 기업이 늘면서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도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5일 한국은행이 지난해 국내 비금융 기업 91만여 곳의 경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매출액영업이익률은 4.5%로 하락했다. 1년 전(6.5%)보다 2%포인트나 줄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곳은 42.3%로 증가했다.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은 한 해 수입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취약기업이란 의미다. 이 비중은 2017년 32.4%에서 2020년 40.9%로 뛰었다가 2021년에는 40.5%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후 지난해 내내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소비ㆍ투자가 위축됐고, 그 결과 취약기업 비중도 다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122.3%, 31.3%로 2015년(128.4%, 31.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 자산(자본+부채) 중 은행 등 외부에서 조달한 차입금 비중을 의미하는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이자 등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서 수익성이 떨어지게 된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하락(78.6%→77.0%, 22.6%→22.1%)한 반면, 비제조업(158.2%→164.0%, 35.0%→36.9%)은 모두 상승했다. 특히 전기가스 업종의 부채비율(183.6%→269.7%)이 대폭 늘었는데 이는 한국전력의 대규모 영업손실 및 차입금 증가의 영향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전과 가스공사를 제외하면 전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118.5%, 30.4%로 소폭 낮아진다.
이성환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전기가스 요금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손실이 계속되지만 그 폭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정도 수준이 되면 기업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도 좀 완화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더 닫고 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8.1로 9월(99.7)보다 1.6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7월 103.2까지 오른 이후 석 달 연속 하락세다. 이 지수가 100 아래면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향후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4%로 지난 2월(0.1%포인트 상승) 이후 8개월 만에 반등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등 영향으로 국제 유가 오름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10월에 공공요금 인상이 예고된 것들이 있었고, 농산물 등 가격도 올라 물가가 계속 오른다고 보는 응답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개월 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금리수준전망지수는 118에서 128로 한 달 사이 10포인트나 올랐다. 지난 1월(13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상승 폭 역시 지난 2021년 3월(10포인트) 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크다. 황 팀장은 “미국이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고 장기 국고채 금리도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이) 당분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것으로 느낀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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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