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직 대통령 첫 연방 기소
기밀문서 불법 반출 혐의로 연방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아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간첩법(Espionage Act) 및 이와 관련된 혐의 7건으로 기소됐다고 뉴욕타임스와 CNN 등이 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이 연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뉴욕 맨해튼 지검이 지난 3월 말 성 추문 입막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회사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했지만, 이는 뉴욕 주법(州法) 위반 혐의였다. 2024년 미국 대선 공화당 유력 후보로 압도적인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가 간첩죄로 기소된 것은 대선 판도에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날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부패한 바이든 행정부가 내가 기소됐다는 통보를 해왔다”며 법무부의 소환에 따라 13일 오후 3시 마이애미에 있는 플로리다 남부 연방 법원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측의 짐 트러스티 변호사는 이날 CNN에 출연해 “(법무부가 적용한) 혐의 7건은 기본적으로 간첩법에서 파생된 것”이라며 “연방법 18편 793조를 말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에 해가 되거나 외국에 득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국방과 관련된 문서나 정보를 고의로 보유하고 있으면서 미국 정부에 넘기지 않은 사람은 최대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미국 대통령기록법은 대통령이 재임 당시 작성·취득한 공문서를 모두 퇴임과 함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인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2021년 1월 퇴임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포함한 대량의 문서를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의 사저로 반출했고, NARA의 반환 요청을 장기간 묵살하다가 지난해 1월에야 일부를 반환했다. 이 때문에 NARA가 법무부에 수사를 요청했고, 지난해 8월 연방수사국(FBI)이 사저를 압수 수색해 추가로 기밀문서를 찾아냈다. 이런 과정이 모두 간첩법상의 ‘국방 정보 무단 보유’에 해당할 수 있다. 트럼프는 또 최대 징역 5년의 처벌이 가능한 공모(conspiracy) 혐의와 최대 징역 20년에 처할 수 있는 공무 집행 방해(obstruction) 혐의도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트루스 소셜에서 트럼프는 부패한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을 기소했다며 “미국 역사의 어두운 날”이라고 했다. 또 “2024년 대선 여론조사에서 모든 후보를 앞지르고 있는 전직 미국 대통령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며 “나는 결백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경쟁 후보인 자신을 기소했다는 취지다.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에게 맞서는 선두 후보를 기소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라며 “이처럼 뻔뻔하게 권력을 무기로 삼는 데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공화당 경선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트럼프 기소를 “연방 사법 당국의 무기화”라고 했다.
백악관은 기소 사실에 대한 언급을 삼가며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다. 한 백악관 당국자는 언론에 “뉴스를 보고 기소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소 사실이 알려지기 전 ‘미국민들이 이번 수사의 공정성을 믿어야 하나’란 질문을 받고 “나는 한 번도 법무부에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