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부재·낡은 규제 금융후진국…외국계 금융사 '패싱 코리아'

 

▲ 영국 런던 금융중심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국계 금융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금융시장의 규제와 성장 한계 탓에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엑시트를 택한 것이다. 2003년 노무현정부 때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같은 문제에 발목 잡혀 금융허브가 되기는커녕 외국 금융사들이 외면하는 곳 중 하나로 전락했다. 오히려 연이은 이탈로 한국 금융 산업 발전에 부작용을 초래하고 외화 공급 창구 및 통화스와프 가교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0일 외국계 금융회사 국내점포 현황 및 주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전체 금융사는 모두 166개(△은행 54 △증권 24 △자산운용 28 △투자자문 10 △생명보험 9 △손해보험 19 △여신전문 14 △저축은행 8)다. 올 3월만 해도 168개였는데 그새 2개사가 축소됐다. 6월 이후 철수 결정을 내리거나 영업 축소 방침을 발표한 금융사까지 합하면 올해만 최소 5개사가 한국을 이탈했다.

은행권으로 좁혀보면 최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뉴욕멜론은행(BNY Mellon)이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제22차 정례회의에서 뉴욕멜론은행 서울지점의 금융투자업 폐지 승인안을 의결했다. 뉴욕멜론은행은 서울 지점의 신탁 업무만 폐지하고, 기업 수신 기능은 유지한다.

캐나다 3위 은행인 노바스코샤 은행도 지난 10월 한국 지점을 폐쇄했다. 1978년 서울지점을 설치한 노바스코샤 은행은 주로 기업금융 중심으로 영업해왔으나, 영업실적이 부진해지면서 지난해 지점 폐쇄를 공식화했다.

씨티그룹은 지난 4월 한국 소매금융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으며 현재 한국씨티은행은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3개국 소비자금융 철수를 시도 중인 씨티그룹은 지난달 12개국에서 40여개의 최종입찰을 받았지만 한국씨티은행 철수 공식화에도 외국계 금융사의 인수 시도가 1건도 없었다. 인수전의 열기가 뜨거운 해외와 달리 한국은 최종입찰 없이 단계적 폐지(청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외국계 금융사 이탈을 두고 코로나19 기간 레버리지 축소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요인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수년 전부터 외국계 금융사의 국내 점포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지난 2013년 영국계 HSBC은행이 국내 소매금융 사업에서 철수한 데 이어, 2015년엔 영국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한국에서 사업을 접었다. 또 2017년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즈, 미국계 골드만삭스, 스페인계 방코 빌바오 비스카야 아르헨타리아(BBVA)가 국내를 떠났다. 2018년에는 스위스 UBS가, 2019년엔 호주 맥쿼리은행, 인도해외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지난해 푸르덴셜생명과 악사손해보험도 한국을 떴다.

금융권은 한국 시장이 세계 금융허브로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노동시장 경직성과 정부 규제를 꼽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직원 고용 승계와 높은 인건비 등 씨티은행 매각 불발 과정만 봐도 문제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적용되니까 할 수 있는 신사업이 극히 제한된다"면서 "급변하는 현재 상황 속 예측불가능한 규제는 금융사의 리스크를 더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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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