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을 어긴 기업에 고발이나 과징금, 경고 이상 제재를 한 실적이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줄었다.
9일 공정위가 최근 발간한 '공정거래위원회 40년사'를 보면 공정위는 지난해 고발, 과징금, 시정명령, 경고 등 제재를 총 1,298건 내렸다. 이는 2000년(1,027건) 이후 20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다.
유형별로 보면 가맹사업법 위반(-55.9%), 사업자단체 금지행위(-55.3%), 부당한 표시·광고(-31.6%)에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금 후려치기 등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제재도 20.9% 감소했다. 불공정 거래, 불공정 약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전자상거래법·방문판매법·할부거래법 위반에 대한 제재도 모두 줄었다. 경제력 집중 억제 위반, 부당한 공동행위, 대규모 유통업법·대리점법 위반만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현장 조사가 어려워지고 제재 수준을 결정하는 전원회의, 소회의가 잠시 중단됐다는 점을 고려해도 공정위 칼날은 점점 무뎌지는 추세다. 공정위 제재 건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전년 동기 대비 19.3% 줄어든 1,840건을 나타낸 후 2018년(1,820건·-1.1%), 2019년(1,728건·-5.1%), 지난해(1,298건)까지 매년 하락했다.
특히 지난해는 제재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24.9%나 줄어드는 등 2019년 가을 조성욱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감소세가 더 가팔라졌다. 고발, 시정명령, 시정 권고, 경고 등(자진 시정이나 과태료 포함) 가릴 것 없이 모두 줄었다. 공정위는 갑을관계 개선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전·현직 직원들이 과징금 인하 청탁 등에 연루되면서 '2020년도 정부 업무평가' 모든 항목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기도 했다.
공정위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정권 후반기가 되면서 힘이 빠진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해에는 특히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 전자상거래법 개정에 집중하면서 본래의 업무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불만도 나온다. 당장 올해 공정위 업무계획도 디지털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이 최우선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첫 순위 과제였던 총수일가 사익편취 제재는 3순위로 밀려났다.
제재 건수는 줄었지만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늘었다. 지난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총 3,803억 원으로 전년(1,273억 원) 보다 199% 증가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건 접수 및 처리 건수가 줄어드는 것은 거래관행 개선, 분쟁조정 활성화, 조정업무 지자체 이양 등에 따른 결과로 판단된다"며 "지난해 실적 감소는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조사, 진술조서 작성 등 대면조사가 어려웠던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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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